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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작성일
 
2019/09/11 22:39:32
 
조회수
10
글제목
 
사도행전 강해(16) - 선교적 교회(행13:1-3)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입니다. 아주 짧은 내용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사건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출발해, 유대와 사마리아를 지나 땅끝까지 가려는 시작을 보여주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그분의 계획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계획이었습니까?
 사도행전 1:8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바라보셨던 그분의 비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다시 만났을 때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회복이 언제인지를 묻곤 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자신들의 조국 이스라엘에만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세계 복음화는 예수님께서 꿈꾸셨던 꿈이었으며, 그를 따르는 모든 신자들에게 주신 비전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4:47-48은,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8:19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이 꿈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복음은 팔레스타인과 수리아 지역에 머물러 있었고, 아직까지 복음을 땅끝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주께서 꿈꾸셨던, 세계를 향한 비전의 성취를 위해 교회가 발걸음을 띠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복음은 유대와 사마리아를 지나 땅끝까지 가기 위한 준비를 마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주께서 핍박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셨고, 사울이라는 한 사람을 부르시고 준비시키십니다.
 베드로를 통해 이방인 고넬료가 성령을 받고 구원받는 사건을 통해 이방인에 대한 장벽을 공식적으로 무너트리셨습니다.
 그리고 흩어진 자들에 의해 세워진 안디옥교회는, 세계 선교의 센터가 되기 위해 서서히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예루살렘 교회가 중심이었던 복음 사역이, 안디옥교회 중심으로 이동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오늘 본문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안디옥은 당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세계 3대 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안디옥은 예루살렘보다도 큰 도시였으며 국제적인 도시였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안디옥교회를 통해 세계 선교를 이루어 가시는 전초기지로 삼은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세계 선교를 위해 전초기지로 삼은 안디옥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제가 이미 사도행전 11장을 설교할 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핍박 때문에 흩어진 이름 없는 성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이방인인 헬라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아름다운 삶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사울의 지도아래 성경을 배우면서 부흥을 경험하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특별히 안디옥교회가 행한 가장 영광스러운 사역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교였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안디옥교회는 이제 훌륭한 지도자를 두 명씩이나 갖고 놀랍게 성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두 지도자를 선교사로 보내겠다니 당황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그것도 한 사람만 아니고 두 명 모두가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합니다. 왜냐하면 안디옥교회는 자기들 교회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아직 복음을 듣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래전에 제가 한국에서 처음 선교사로 나가려고 할 때, 교회의 많은 분들이 저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한국에도 전도할 곳이 많은데, 왜 전도하기 어려운 다른 외국으로 가려고 합니까? 목사님이 한국에서 선교사들을 훈련하여 보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늘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약 130년 전에 한국에 선교사로 왔던 서구 선교사들의 헌신이었습니다.
 그들이 당시에 복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조선이라는 한 나라를 위해 와주었기에, 오늘 우리가 복음의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찾아와준 선교사들과, 그들을 우리를 위해 보내준 교회의 헌신 때문에, 우리가 오늘 이런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십니까? 안디옥교회의 헌신이, 오늘 전 세계가 복음을 들을 수 있었던 기회를 더 빨리 준 결과가 된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왜 안디옥교회가 세계 선교에 적합한 선교적 교회가 될 수 있었는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안디옥교회의 구성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안디옥교회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사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오늘날 키프러스인 구브로 사람이고, 니게르 시므온은 그의 별명이 보여주듯이 피부가 검은 아프리카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북아프리카 사람이었고, 마나엔은 헤롯 안디바의 젖동생이라고 소개하는데, 이것은 헤롯왕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왕궁에서 자랐다는 의미이며, 아주 가까운 사이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은 길리기아 다소 출신의 정통 유대인이며 바리새인으로 학자였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젊은이도 있었고, 나이 든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도 있었으며 왕궁에서 자란 귀족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이런 안디옥교회의 구성원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안디옥교회는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리더쉽을 가졌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 속에서 이미 잘 교제하는 것을 배웠고, 함께 일하는 것을 배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다양한 민족 사람들이 함께 교제하며, 다양한 문화 와 다양한 세대가운데 교제한 사람들이기에, 그들은 이제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도록 준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피부색이 다르고 출신 배경이 다르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다른 것이 보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고 문제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판단하고 다른 것들이 보이는지 아십니까? 주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면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면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요. 형제요 자매입니다.
 테니스장 가면 그 사람 직업이 무엇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 실력이 얼마나 되나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실력 있는 사람과 한번 경기하려고 노력합니다. 실력이 모든 것을 덮어버립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치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고 우리가 다 형제요 자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다르지만, 한 가지 같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꿈꾸는 비전입니다.
 우리 교회 구성원은 다양하지만, 우리 교회가 꿈꾸어야 하는 비전은 같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꿈꾸셨던 세계비전입니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그분의 꿈이, 우리 교회의 꿈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여기에 존재하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둘째는, 안디옥교회의 신앙생활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절을 보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 3절에는 “금식하며 기도하고”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안디옥교회의 신앙생활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금식은 깊은 회개가 필요할 때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또는 더 깊이 주님과 교제를 하고 싶어 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금식은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음식을 금함으로 육체적인 욕망을 절제하고, 더 깊이 주님께 기도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아마도 안디옥교회는 지금 더 깊이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의 뜻을 더 찾고 싶은 열망 때문에 금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은 주님과 교제하기 위해 기도에 힘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기도하는 교회였기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를 선교의 황금기라고 부릅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세계 선교를 위해 선교사로 헌신하고 전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아십니까?
 1806년 미국의 미세추세추의 윌리엄스 대학교에 몇몇 학생들이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대학의 영적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안에서 기도하다가 조롱을 받자 그들은 대학교 밖에서 기도 모임을 가졌습니다. 어느날 그들 중에 다섯명이 폭우를 만나 건초더미 안으로 피했고 그곳에서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의 제목은 학생들 사이에 선교의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사무엘 밀즈라는 한 학생은 자기 안에 성령께서 주신 선교의 부담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날 그곳에서 기도했던 다섯명의 대학생은 선교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정하였고, 다른 대학생들에게도 선교를 위한 부담을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도록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날 기도 모임을 사람들은 <건초더미 기도회>라고 불렀습니다.
 기독교 역사학자들은 이 건초더미 기도회에서 <세계 선교를 향한 미국 학생들의 도전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가장 위대한 세기는 이 기도회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 불씨가 큰불을 일으킨 것입니다.
 기도를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세계 선교를 위한 가장 강한 동력입니다. 세계 선교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일하실 것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선교적 교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셋째는, 성령님과 관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안디옥교회를 세계 선교를 위해 부르신 분은 성령님이셨습니다. 안디옥교회가 스스로 결정한 것도 아니었으며, 바울과 바나바가 스스로 자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2절을 보면 분명히 성령께서 안디옥교회에 명하신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선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며, 성자 하나님 예수께서 오신 이유이었으며, 성령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사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리빙스톤은 <하나님은 유일한 아들을 가지고 계셨고, 그 아들은 선교사였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선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도 바로 선교 때문이었습니다.
 에밀 부르너라는 신학자는 “불이 타므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하므로 존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교회의 많은 사역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중요한 사역인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 천국의 소망이 없고 지옥을 향해 가는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누가복음 19:10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영혼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안디옥교회는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예수믿고 구원받았기에, 그 기쁨과 감격을 알고 있었기에 너도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증거한 것입니다.
 그들은 누가 가르쳐주어서가 아니라, 이 일이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사명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그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세계 선교를 위해 드리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이 쉬운 일이었을까요?
 종종 교회는 선교를 이야기하지만, 선교를 위해 드려야 할 희생과 헌신에 대해서는 아까워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전주 안디옥교회 이동휘 목사님께서 쓰신 글을 잠시 소개합니다.
 인간 역사 5,580여년 동안에 15,531건의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적을 사살하는데 주전 45년에는 미화 75센트가 사용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때는 2,100불이, 제2차 세계대전 때는 20만불이 소비되었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103만불이 소모될 것이라고 한다.
 실로 엄청난 액수를 투자하여 한 사람을 줄일 작정인 것이다.
 이러한 반면 한 사람의 생명을 구출하기 위한 구원경비는 얼마 되지 않는다. 죽이는 데는 아까운 줄 모르고 막대한 물질을 낭비하면서도, 살리는 일에는 궁색을 떨고 있다.
 초대교회는 온 생애와 재산을 주님께 투자했다.
 매일 죽어 가는 사람을 찾아가고 장사 지내 주었다. 그리스도의 희생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기근에 굶주린 자들께 드려진 헌금(연보)은 전액 가난한 가정으로 전해졌다. 그들의 스승인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순종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스승을 바꾼 것 같다.
 예수님 명령을 직접 듣지 않고 세속적 지도자를 두고 있다.
 주의 명령은 첫 번째가 아니라 멀리 아홉 번째에나 그 비중을 두는 것 같다.
 특히 구원경비 조달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결혼비용, 공부비용, 여행비용, 주택비용, 차량비용과는 아예 비교할 수조차도 없다. 선교비로 사용하는 돈이 담배값, 술값보다도 못하다.
 교회조차도 구원비용은 체면 예산이다. 자체 소모에는 풍성히 지나칠 정도로 사용하면서도 푸대접받는 것은 선교와 구제비다.
 초라한 모습이다.
 헨리 마틴의 경고는 무섭다. <당신의 수입에 따라서 하나님께 드려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헌금에 따라 수입을 정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건강, 물질, 명예, 지식, 자녀. 받은 대로 넉넉하게 투자하라. 인간은 원래 사용권만 있고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소유주가 그날에 사용 비리를 밝혀낼 때를 생각해야 한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외침을 들어야 한다.
 구원비용을 늘려라. 지금 즉시로 반응해야 한다.
 이 글을 쓰신 목사님이 사역하던 교회는 한국에서 선교에 가장 모범적인 교회 중에 하나인 전주 안디옥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의 슬로건은 <선교를 위해 불편하게 삽시다>입니다.
 
 이제 성령님께서는 말씀하셨고, 안디옥교회는 순종합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는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하고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아직 어린 교회가, 자신들도 지도자가 필요한 교회가 기꺼이 순종합니다.
 본문 2,3절을 보면, 새로운 선교사역은 안디옥교회의 예배와 기도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함께 부르심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지시했다고 해서 지역교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의 후원을 받았고 나중에 돌아와 안디옥교회에 보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교회와 무관한 선교사가 아니라 지역교회에 속한 선교사로 사역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선교사들은 반드시 지역교회와 자신의 부르심을 나누고 공유해야 합니다.
 제가 많은 선교후보생들을 만날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본인의 선교에 대한 소명의식은 분명하고 열정은 있는데, 공동체 안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도 선교헌신자들의 부르심을 함께 인정해야, 함께 기도로 재정으로 지원할 수 있는데 때로는 마음만 앞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선교사로 나가는 것보다도 먼저 지역교회의 충성스러운 일군이 되어야 하고 지역교회의 지체로서 인정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이제 성령께서 안디옥교회를 통해 세계 선교를 계획하시고 출발시키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오늘 우리를 사용하셔서 일하시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제가 늘 기도하며 고민하는 것은, 우리 교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 지체들이 머무는 곳에 과연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입니다.
 제가 정말 보고 싶은 것은, 우리 교회 지체들이 일하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교회는 가기 위해 모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순종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기를 기대한다면,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성령께서 우리 공동체에 말씀하시면 온전히 순종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더 많은 선교헌신자들이 일어나고, 더 많은 선교를 지원하는 일에 우리의 재정이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안디옥교회를 2주에 걸쳐 살펴보았습니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문화, 다양한 세대...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 서로 섬기며 가르치며 배우며, 교회를 이방 세계 가운데 세워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지셨던 세계 복음화의 꿈을, 안디옥교회는 같은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오늘 안디옥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꿈을 우리도 꾸어야 합니다.
 안디옥교회가 보여주었던 헌신과 희생을 우리 교회도 따라가야 합니다.
 안디옥교회는 우리 교회의 롤모델입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들, 오직 삶 가운데 그리스도만 높아지기를 원했던 사람들, 입술의 고백과 삶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었던 사람들, 그리고 재물과 헌신으로 세상과 이웃을 섬겼던, 선교적 사람들이 안디옥교회였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안디옥교회처럼 아름답게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저와 함께 이 일을 위해 마음을 같이 하실 분은 누구십니까?
 
 이제 두 사람은 성령의 지시에 따라 지체없이 짐을 꾸립니다.
 어떤 일들이 앞으로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로운 도시에서 자신들을 통해 어떻게 일하실까? 라는 흥분과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하려고 준비합니다.
 여러분도 기대가 되십니까? 다음 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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