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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작성일
 
2019/08/25 23:39:50
 
조회수
13
글제목
 
사도행전 강해(15)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탈출(.....






사도행전 강해(15)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탈출(행12:1-12)
 
 
 사도행전 12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1-2절)
 그때는 언제였습니까? 안디옥에서 이름 없는 성도들에 의해 세워진 안디옥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에 의해 부흥을 경험하고 있었고, 바울과 바나바가 교회의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스데반의 일로 인해 핍박으로 흩어졌던 이전보다 더 큰 성장을 이루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바로 이러할 때, 헤롯왕이 교회 중에 몇 사람을 해하려고 결정하였고, 그중에 사도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를 잡아 처형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헤롯왕은 헤롯 아그립바, 또는 아그립바 1세로 알려져있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던 헤롯왕의 손자입니다.
 그가 교회 지도자를 해칠 계획을 세운 것은, 바로 유대인들에 환심을 사려는 그의 정치적 책략에서 나온 방법이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유대 지도자들에게 예루살렘 안에 다시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과 가정교회의 모습은 눈의 가시처럼 위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왕에게 가서 유대교를 위협하고 있는 기독교를 고발하였을 것이고, 헤롯왕은 이 기회를 잘 이용하면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더 많이 얻을 뿐 아니라, 그의 정치적 지지와 기반을 견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의 이런 정치적 계략은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들 중에 우선 야고보를 잡아들여 참수합니다.
 야고보는 정당한 재판도 받지 않고 처형당한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이런 그의 행동에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본 헤롯은, 이제 베드로까지 처형하기 위해 잡아들였습니다.
 헤롯은 자신이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를 맞추어 베드로를 처형할 이벤트를 준비한 것입니다.
 종교적인 명절에는 처형을 하지 않았기에, 이제 무교절 끝의 유월절 명절이 끝나면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를 죽이려고 감옥에 가두어 놓은 상태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고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갑자기 교회 지도자들 중에 두 명을 동시에 잃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하면서, 또다시 심한 핍박이 찾아올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 우리는 나갈 길이 없이 사면이 다 막힌 것 같은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1:8에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다윗도 한때 “나와 죽음 사이에는 한걸음뿐이다”(삼상20:3)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욥도 “죽기를 바라도 죽을 수 없고… 평강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 임했다”(욥3:21,26)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고백을 한 적이 혹시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사도 베드로에게 비슷한 절망이 찾아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사도 야고보가 투옥되어 칼로 죽임을 당한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양 발목을 묶은 쇠사슬을 보면서 절망가운데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감옥 밖에서 지키고 있는 군인들을 보면서, 이제는 끝났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월절이 끝나는 날, 곧 며칠 뒤면 처형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는 이 기적의 비밀을 알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첫째는, 기도입니다.
 5절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당시에 교회는 어떤 특정한 건물에서 모인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모였기에, 여러 집에서 교회의 모임이 있었고, 그곳에서 베드로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타난 옥문이 열리는 기적은 개인적인 기도가 아닌, 베드로를 위한 교회의 연합기도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연합하여 함께 모여 기도할 때, 공동체의 기도에는 특별한 응답이 있습니다.
 
 저희 가정이 카자흐스탄에서 사역할 때, 저희가 사역하던 도시에 카지노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카지노에서 밤을 새우며 돈을 탕진하고 가정이 깨어지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의 성도들 가정에서도 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모여 기도할 때마다 카라간다의 모든 카지노가 없어지도록 기도했습니다. 카지노 대신 건전한 놀이 문화가 더 많이 생기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없어지기는커녕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도시 중심 한복판에 큰 건물을 새로 짓는데 카지노가 들어선다는 것입니다. 마치 사단이 우리가 기도할 때 조롱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선교사들은 실망하지 않고 기도를 부탁하고, 계속 모일 때마다 기도했었는데, 일 년 정도가 지난 후 카자흐스탄에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법이 생겼습니다.
 전국의 모든 카지노를 캅차카이라는 도시로 옮긴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도시의 모든 카지노가 사라졌습니다. 카지노가 되려고 했던 큰 건물은 문화센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합기도가 응답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태복음 18:20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곳에는 주께서 친히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께서는 성도들이 이 땅에서 고독한 싸움을 하지 않도록, 그분의 몸 된 교회의 연합기도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 제목을 교회에 알리는 것을 기뻐해야 하며, 교회는 마땅히 다른 지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때때로 자신의 기도 제목을 부탁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사도 바울의 편지들을 읽어보면 늘 그는 자신을 위해 교회가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놀라운 기도의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지체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주께서 가르쳐 주신 모본일 뿐 아니라 성도들 간의 마땅한 행동인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신 부흥의 현장과 축복의 자리는, 모두가 다 함께 모여 기도했던 장소에서 일어났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연합기도에는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5절을 계속 보면, 교회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간절하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말은 <내 모든 열정과 힘을 소모시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다해 모든 것을 건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회의를 열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헤롯왕에게 간청해보자는 말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 체념하자는 비관주의적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신뢰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가 옥문을 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 응답을 우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어떻게 그렇게 됐겠지, 그게 기도해서 그런걸까?>하고 가볍게 생각합니다.
 
 어느 날 한 불신자가 목사님에게 와서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기도 응답받았다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는데,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때 목사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나, 재미있는 것은 제가 기도할 때마다 우연이 항상 생긴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연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셨습니까?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을 압니다.
 
 한번은 한국에서 카작에 단기선교팀이 왔습니다. 처음 하루를 함께 지내보니 선교보다는 딱 놀러 온 것이 보였습니다.
 다음 날 기차를 타고 막 떠났는데, 한 청년이 배를 잡고 고통을 호소하며 뒹구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기차는 떠났기에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영적 싸움의 시작이다 라고 생각하여 청년들 모두 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치자마자 형제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옆에 있다가 <에이 꾀병이었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저는 영적 세계에 무심한 그 청년들을 책망하였습니다.
 
 야고보서 5:16은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고 약속하시면서 엘리야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5:17-18을 읽겠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저는 1991년 부산에서 있었던 선교 횃불 대회를 기억합니다.
 이 대회는 부산에 있는 학생선교단체들과 파송선교단체들과 교회가 연합하여 한 최초의 선교대회였습니다.
 경남지역의 대학 청년들을 위해 선교대회를 준비하고 고신대학교 운동장에 대형천막을 치고 내일이면 시작하는데, 다음 날 새벽에 엄청난 태풍이 부산으로 몰려온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습니다.
 태풍이 오게 되면 야외에 친 대형천막이 날라가기에 대회를 치루기가 어려워진 상태였습니다.
 그날 밤 우리 조직위원들은 모든 일을 멈추고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우리가 들은 뉴스 소식은 태풍이 일본 쪽으로 빠져나갔는데 기적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때 기적이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으며, 대회 기간 중에 단 한 방울의 비도 없이 선교대회를 잘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중국의 가정교회 지도자 중에 한사람인 윈 형제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복음을 전하다 많은 핍박을 받은 분인데, 너무 심한 핍박 때문에 자기 생명을 데려가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한번은 감옥에 갇혔을 때, 가정교회 형제자매들은 금식기도하며 그의 석방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약속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갑자기 그에게 일어나 감옥 안에서 걸어 나가라 하셨습니다.
 이 음성이 의아했지만 순종해 철문을 열고 나갔는데, 하나님은 계속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까지 갈 때도 아무도 막지도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자기를, 간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감옥 대문을 나서는 순간에 택시가 와서 <어디 가십니까?> 물었고 그는 베드로처럼 기적같이 감옥에서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어떤 문도 열고 여러분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주님의 도우심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라고 간증하는 것이,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내 작은 아버지 – 공안에게 잡혔을 때 늘 있는 이야기)
 
 저는 <인생의 비극은 응답 되지 않은 기도가 아니라, 드려지지 않은 기도에 있다>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응답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싶다면, 하나님의 응답을 보고 싶다면 간절히 기도해보십시오.
 
 또한 그들은 한번 기도하고 멈춘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12절을 보면,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집에 교회의 여러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한번 기도하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와 마가의 다락방에 왔을 때에도, 교회는 아직도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감옥에서 구출한 것은 천사의 활동이었지만, 천사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바로 교회의 지속적인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부담이 있다면, 그 부담이 해결될 때까지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중간에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누가복음 18:1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기도를 중단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쉽게 낙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하는데, 응답의 싸인이 하나님께로부터 올 때까지 멈추지말고 기도해야 하는데, 조금 기도하고 그냥 포기하고 낙심해 버립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아이들 치아교정 하는데도 1-2년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사람 바꾸고, 환경을 바꾸는데 찔금 기도합니다.
 한두 번 기도하고 뭘 기대하십니까?
 누가복음 18:7을 보십시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으시겠느냐?”
 바로 끈질긴 기도가 응답받는 비결 인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같은 기도 제목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가장 오래 기도한 것은 저의 부모님이 예수 믿도록 기도한 것일 것입니다. 거의 10년이 넘도록 매일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마침내 이 기도의 응답을 보았고, 두 분 모두가 신앙생활을 잘하다 주님과 함께 지금은 천국에 계십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소돔의 멸망 가운데에서 거기 살고 있던 롯이 구원받았던 이유는,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 19:29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나를 위해 기도하는 한 사람의 기도가, 나와 내 가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오늘 여러분에게도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어려움이 찾아올 때 기도합시다. 서로 서로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기도함으로 서로를 격려합시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통해 배우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가 함께 연합하여 기도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어려움을, 나의 문제를 함께 기도해 줄 수 있는 신앙의 친구들을 여러분은 가지고 계십니까?
 이런 기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평소에 신앙의 친구들과 함께 교제하고 계십니까?
 만일 없다면, 예배 마친 후에 셀 모임에 참석하십시오. 주중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십시오.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신앙의 친구들을 사귀십시오.
 <형제여, 자매여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기도 제목을 나누십시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19에 약속하셨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오늘 이 기적의 사건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사건을 통해, 간절한 교회의 중보기도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왜 야고보는 죽고, 베드로는 기적적으로 구원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야고보는 죽음의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시고, 베드로는 살리셨는가 하는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두 명의 상황 속에 교회는 모두 기도 하였을텐데 말입니다.
 야고보를 위한 신자들의 기도가 잘못되었을까요? 충분한 믿음이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는 야고보보다 베드로를 더 사랑하신 것일까요?
 모든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저희가 카작에서 사역할 때 저희 집 옆에 살고 계시던 저희 교단 선교사 한 분이 강도들에 의해서 피살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현장에 있었던 남편은 살고 그의 아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몇몇 저희 교회 현지인 성도들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교사를 보호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죽어야 했습니까?>
 저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을 믿지만,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는지는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남으로 알게 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삶은 이렇게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난제들로 가득합니다.
 어째서 같은 사고에서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나는가, 어째서 한 자녀는 건강한데 또 다른 한 자녀는 장애인으로 태어나는가? 어째서 기도할 때 한 사람은 암에서 치유되는데, 또 다른 한 사람은 그렇게 빨리 이 세상을 떠나는가?
 어떤 때는 기도하면 즉각적으로 응답 되는데, 어떤 때는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가?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 것들을 모두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완전하며 선하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약속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도한 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직면하는 위기의 결과와 상관없이 계속 하나님을 향해 신실하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분이 지셔야 할 십자가를 앞에 놓고 피하고 싶었지만,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시고 순종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 방법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이것을 정말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은 종종 고난이 올 때 무너집니다. 적당히 타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믿음의 신뢰가 승리의 비결입니다.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우리는 정확히 모릅니다.
 승리의 멋진 결과로 주어질지, 아니면 고난을 그냥 통과하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그분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3장을 읽어보면 느부갓네살왕이 금으로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절하지 않는 자는 다 죽으리라는 왕명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세 청년이 이 왕명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좋아하고 총애했던 왕은 이 청년들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이 세 청년들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다니엘 3:17-18입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자신들의 믿음의 결과가 어떠하든지 계속 하나님을 신뢰하겠노라고 고백하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청년의 고백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는 감옥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의 신뢰가 있었기에, 내일이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데도 그는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게 지금 이해가 되십니까?
 어떻게 죽음 앞에서, 이 상황에서 잠이 올 수 있을까요?
 
 제가 종종 간증하는 내용인데, 저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저희 모든 가족이 작은 방 하나에 모여 살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 집에 그리스도인은 저 혼자였습니다.
 저는 종종 한숨을 푹푹 쉬시는 아버지에게 너무 염려하지 마시라고 위로해드렸습니다.
 어느 날 저에게 아버지께서 <넌 집이 이렇게 어려운데 걱정이 안 되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걱정한다고 바뀌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걱정하냐>고 말씀드렸더니, 가만히 저를 보시다가 <그러니 네가 살이 찌지>하고 웃으셨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사실 그때 염려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을 통해 우리 가정에 하실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단순히 지금 포기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는 깊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이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 베드로 전서 5:7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저가 너희를 돌보신다.”고 고백합니다.
 베드로는 감옥 안에서 절대절명의 시간 앞에서도 주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배웠던 사람이었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라는 믿음의 신뢰가 있었기에 평안히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20-21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 안에 죄수의 몸으로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것이, 그의 삶에 죽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기에, 그는 삶과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어도 주님은 일하십니다. 우리가 다 보지 못해도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다 일어나 <그 사랑 얼마나> 찬양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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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강해(7) - 교회사역의 우선순위(행6:1-7)

김기태

20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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