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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작성일
 
2019/08/12 12:35:32
 
조회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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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14) - 안디옥교회(행11:19-26)






사도행전 강해(14)
  안디옥교회(행11:19-26)
 
 
 종종 교회에 영적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사람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캠페인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초대교회가 항상 완전한 교회는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초대교회라는 말보다는 신약교회로 돌아가자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회의 본질적인 원리를 다시 회복하자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안디옥교회는 초대교회 중에서도 신약교회 본질을 잘 보여주는 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는 기독교 역사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주었으며, 오늘날 모든 이 땅의 교회들이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답게 성장하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안디옥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계속 성장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안디옥이라는 도시가 어떤 도시였는지를 보겠습니다. 당시에 안디옥은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제국의 3대 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인구가 50만명 정도 되었고,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80km 떨어진 도시였습니다. 시리아 지방의 행정 중심지였으며, 아폴로신과 아르테미스 신의 숭배지였습니다.
 안디옥은 경제적으로 부요한 도시였으나, 성적으로 아주 문란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도시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온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이제 안디옥에 새로운 교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안디옥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19절입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스데반의 일로 인해 예루살렘 교회는 심한 핍박을 받게 되었고 그 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흩어지면서 이제 안디옥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 이들은 낯선 도시에 살러 온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이민 온 것입니다.
 이민 온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정착하는 것입니다. 집도 구해야 하고, FRO 등록도 해야 하고, 직장도 찾아야 합니다. 도시 이곳저곳의 정보도 알아야 하고, 아이들 학교도 알아봐야 하고, 잘 모르면 교민밴드 로즈 마담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정말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흩어져 이곳에 온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그들의 삶의 우선순위는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분을 높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디옥교회는 핍박을 인하여 흩어진 사람들이 와서 복음을 전하여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본문에서 안디옥교회를 세운 사람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들이 중심이 되었던 교회였고, 사마리아교회는 빌립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안디옥교회를 세운 사람들은 말 그대로 그냥 <흩어진 자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도 아니었고, 교회의 유명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목사도 아니고 선교사도 아닌 사람들입니다.
 다만 복음을 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예수가 구세주요, 주인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는 삶의 목적이요 살아가야 할 이유였습니다.
 (엡1:3-13, 롬8:14-17)
 이것이 복음을 아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에 사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곳에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 인도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여러분이 인도에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안디옥교회를 세운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20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절입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그들은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 이런 복음 전도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로서는 커다란 시도이었습니다.
 이방인을 개로 여기고 부정한 존재로 여기던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사도들이 아닌 평신도들에 의해 오랫동안 유대인들에게 내려왔던 전통과 편견을 뛰어넘어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에 또 한번의 위대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세계 선교에 막혔던 장벽을 뛰어넘는 위대한 발걸음을 이룬 사람들은 바로 흩어진 이름 없는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전통과 편견의 벽을 뛰어넘은 것만 아니라 올바른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증거 한 것은 당시에 유행했던 철학도 아니고, 유대인의 율법도 아니고, 자신들의 전통도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들은 올바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오직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자기들의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기독교가 증거 하는 메시지의 전부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이렇게 올바른 것을 증거 했을 때
 21절을 보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므로 수다한 사람이 주께 돌아오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 속에 그리고 우리들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고 그분만 높아질 때 영혼들이 주께 돌아올 것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은 좋은 지도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22-25).
 바로 안디옥교회를 도우러 온 바나바가 그 사람입니다.
 22절에 보면 예루살렘교회가 안디옥교회의 소식을 듣고 도움을 주려고 보낸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23절에 보면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바나바는 이름도 없는 성도들에 의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진정으로 기뻐했던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속상해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자기가 주도하지 않았는데도 진정으로 주의 역사를 기뻐하고 있습니다.
 24절에 보니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성숙한 인격과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은 바나바를 신뢰하였기에 안디옥에 기꺼이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보는 보편적인 진리는, 교회 일은 영성과 인격에 따라 맡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회적으로 높은 직위에 있거나, 많이 배웠거나, 오래 교회를 다녔다거나, 달란트가 많다거나 해서 맡겨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바나바의 훌륭함은 25-26절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25-26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는 다소에 가서 바울을 데려다가 함께 사역했던 것입니다. 기억하십니까? 바울이 처음 회심했을 때 그를 제자들에게 소개한 것도 바나바였습니다(행9:27).
 아마 그때 바나바는 바울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은사와 가능성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오면 안디옥교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번 생각 해보십시오.
 이렇게 바울을 부르러 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바나바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오면 그의 뛰어난 은사 때문에 이제는 자신보다 사람들이 바울을 더 좋아할 것이라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바나바보다 더 재능과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오면 자신의 리더쉽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자기 자신의 인기와 자리보다는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의 영적 성숙에 더 관심이 있었기에 바울을 기꺼이 데려옵니다.
 이것을 우리 교회도 배워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아름답게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를 섬겨줄 때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할 때부터 모든 성도들이 자신들의 은사를 가지고 정말 잘 섬겨주셨습니다. 때로는 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와도 섬기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자신보다 재능이 좀 떨어져도 기꺼이 인정하고 칭찬하고 세워주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섬겨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섬김 때문에 오늘까지 우리 교회는 잘 자라왔습니다.
 저는 늘 이렇게 섬겨주셨던 모든 분들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 소망하기는, 자신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졌거나 가지지 못했거나, 서로를 기꺼이 인정해주고, 서로의 은사를 존중해주고 귀히 여기며 세워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 교회 가운데 계속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안디옥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 교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느냐 하는 것을 알 때 배울 수 있습니다.
 26절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당시 안디옥이라는 도시는 큰 상업 도시일 뿐만 아니라, 헬라철학의 영향력 속에 있었던 도시였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과 물질적인 가치관이 팽배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안디옥에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물질 만능주의 사상과 종교 다원주의적인 교육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습니다.
 특히 맘몬이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유혹과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 속에서 우리를 온전히 인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밖에는 없습니다. 성경만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경만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성경만이 진정한 풍요로운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우리의 삶과 신앙의 유일한 권위로 여기며 최고의 모본으로 여겨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성경을 공부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모두가 말씀으로 훈련된 제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우리 구르가온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성경의 사람들>이라는 별명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여러분의 영적 목자로써 성경을 연구하여 여러분에 가르치는 이 책무에 게으르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성경을 배울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매일 생활에서 실천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구요? 26절을 보면 그들의 별명이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 스스로가 만든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초대교회는 제자, 성도, 형제 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교회 밖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붙여준 별명이었습니다.
 당시 안디옥은 로마사람, 헬라사람, 유대인들이 살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별명은 안디옥교회 사람들의 삶은, 헬라인 같지도 않고 로마인 같지도 않으며 유대인 같지도 않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무언가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문화를 따라가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걸었던 일반적인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세상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의 문화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별명은 칭찬이 아니라 조롱이었습니다. 타락한 도시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붙여진 조롱 섞인 별명이었습니다.
 
 우리도 한때는 예수쟁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예수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때문에 붙여진 조롱 섞인 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은 이 별명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너무 침묵하는 그리스도인, 너무 조용한 그리스도인, 오로지 신앙을 교회 안에서만 필요한 것처럼 생각해 버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너무 많습니다.
 오늘 교회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할 뿐 아니라, 그 믿음대로 살아야 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이 비록 조롱에 가까운 별명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들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이름의 영광을 되찾아야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 시절에 왕과 같은 이름인 알렉산더라는 이름을 가진 군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군인의 행실이 올바르지 못해 다른 군인들이 그를 조롱하고 비웃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알렉산더 대왕이 듣게 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부하 군인인 알렉산더를 부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에게 말합니다.
 “네 이름이 알렉산더냐? 내가 너의 소문을 듣자 하니 너의 못된 행실 때문에 내 이름이 욕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제 한 가지를 너에게 명령한다. 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네 행실을 바꾸든지 하라.”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우리들을 볼 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주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의 문화와 구별됨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 땅의 작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며, 우리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공동체를 세워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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