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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작성일
 
2019/07/29 20:34:51
 
조회수
20
글제목
 
사도행전 강해(12) 옆에 있어 준 사람들(행9:10-31)






사도행전 강해(12)
 옆에 있어 준 사람들(행9:10-31)
 
 
 
 존 스타우피츠, 모데카이 햄, 김순종, 박용택, 이수봉, 박기호
 혹시 제가 열거한 이름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오늘 설교가 끝날 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기적적으로 만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기적적으로 만날 때 강력한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 의해 다메섹으로 들어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사울은 생각할 것이 참 많았을 것입니다.
 특별히 그가 만난 예수가 누구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배웠던 성경의 많은 예언들을 기억했을 것이고, 예수께서 그 모든 예언을 성취하신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시고 영광중에 계신 것을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하였기에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갑자기 사울은 이제까지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진리가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자신이 그렇게 미워하고 없애려고 했던 바로 그 진리였습니다.
 사울은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서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다메섹에 있는 또 다른 한 제자를 부르십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10절입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사도행전 22:12을 보면, 아나니아는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제 이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이 사람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에게 직가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머물고 있는 사울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11절).
 그리고 이미 사울에게 또 다른 환상을 통해 아나니아가 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눈을 뜨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12절).
 하나님께서는 사울과 아나니아의 만남을 주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아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에 대한 소문을 이미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3-14절입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이 질문은 아나니아에게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사울이라는 청년에 대한 소문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나니아의 말은 <주님, 그 사람은 지금 교회를 핍박하러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가라니요. 그것 좀 말이 안 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지금 다메섹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울이 교회의 핍박자였고 그가 왜 다메섹에 왔는지를 알고 있었기에 가능하면 이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이런 사울에게 가라고 하니 아나니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성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요. 기억하십니까? 주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하십니다.
 비가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던 세상에서 노아에게 배를 만들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이해가 되었을까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인지 말씀하시지 않고 그냥 떠나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이건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늙었고 그의 아내 사라는 생리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그런데 일 년 뒤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게 믿어집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바로는 군대를 보내 그들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앞에는 바다가 가로막고 있어 더 이상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라고 하십니다. 이게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합왕에게 가서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요단강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그곳에 가서 숨으라는 것입니다.
 숨어있는 엘리야 선지자를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한 양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매일 아침저녁으로 까마귀가 떡과 고기를 물어다 준 것입니다.
 예수님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온 5천명이 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파하자 제자들은 무리들을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자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한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오병이어를 가지고 도대체 뭘 할 수 있다고 주님은 가져오라고 하신 것일까요? 이게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요. 때로 신앙은 불합리해 보이는 명령에 우리가 반응할 것을 요구합니다. 믿음은 순종을 요구합니다.
 제 인생 속에서도 수없이 많이 경험한 것은 주께서 말씀하시면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배운 것은 이해할 수 없어도 순종하면 그분이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에게 능치 못할 일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이제 주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왜 사울을 불렀는지, 그리고 그를 어떻게 사용하실 것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15-16절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를 지나 땅끝 이방인까지 가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토록 이방인을 싫어하고 경멸했던 이 유대인 청년을 이방인을 위한 사역자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나니아는 주의 계획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울을 찾아가 <네가 길에서 만났던 예수가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아나니아의 기도로 사울은 눈을 뜨고 자신의 신앙의 고백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사울이 분명히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침례는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기로 결정했다는 신앙의 외적 고백이었기에, 이제 사울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사울은 즉시로 태도를 바꾸어 교회의 핍박자에서 예수님을 증거 하는 증인의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20-22절입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온 이유는 이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여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기 위함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이곳에 온 사울이 반대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으니 다메섹 사람들이 당연히 놀라지 않겠습니까?
 또한 유대인들이 당혹하였던 이유는, 사울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언하고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울이 변한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울은 이제 예수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예수가 누구신가를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는 우리 죄를 위해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자신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자유케 하시는 구원자요, 주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분이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기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라는 말에서 <증언하다>는 뜻은 <모으다>라는 말입니다.
 사울은 메시아에 대한 구약성경의 예언들을 사용하여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입니다.
 사울은 바리새인으로 성경을 잘 알았을 뿐 아니라, 그는 학자로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고 증명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을 것입니다.
 
 이제 23절을 보면, <여러 날이 지난 후에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 1:17을 읽어보면, 사울은 당시 다메섹을 떠나 3년 정도 아라비아광야에 가서 머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학자들은 <여러 날이 지난 후>라고 하는 이때가 아라비아광야에서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온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학자들 마다 언제 다메섹을 떠나 아라비아광야로 갔는가에 의견이 조금씩 다르지만, 사울이 회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시간 사이에 3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합니다.
 명백한 것은 다메섹에서의 사울의 전도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죽이기 위해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킬 정도였습니다. 도망갈 수 없도록 출구를 지킨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을 받아 성벽에서 광주리를 타고 탈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26절입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이미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사울의 회심을 전적으로 믿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울의 회심 사건과 증거 때문에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제자들은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사울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아마 사울의 회심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확신할 수가 없었기에 정말 이 사람이 회심했는가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3년 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난 사울의 행적이나, 혹시 교회를 파괴하려는 음모가 있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이 사울을 예루살렘교회의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도록 다리를 놓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나바였습니다.
 27절입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바나바는 사울의 삶에 일어난 진정한 변화를 믿고 보증해주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커다란 모험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의 이야기를 믿었고 사도들과 예루살렘교회에 그를 소개합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 1:18-19을 읽어보면, 사울은 예루살렘에 15일 정도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사도들 중에서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를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15일 정도 짧은 시간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사울은 예루살렘교회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였고, 예루살렘에서도 열심히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사울의 증거와 변론으로 인해 다시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반대가 심해지고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하자, 교회는 사울을 그의 고향 다소로 보내 피신시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사울의 모든 재정을 지원해주었을 것입니다.
 사울은 그의 고향 다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에 등장하기까지 거기서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이 회심한 이후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어떻게 즉각적으로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사울의 사역이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어갈지를 예고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사울이라는 한 청년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관심을 집중하였습니다.
 바로 아나니아와 바나바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께서 아나니아를 사용하여 사울을 회복시키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나타나 사울에게 가라고 했을 때, 아나니아는 사울이 왜 다메섹으로 왔는지를 알고 있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할 수가 없었습니다(13-14).
 아나니아에게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순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울을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 전하기 위해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순종합니다(15).
 그리고 사울을 <형제 사울>이라고 부르면서 그를 믿음 안에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격려하고 그를 회복시키는 것을 봅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의 회심 후 첫 믿음의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사울을 형제로 환영해 준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그를 부르신 주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려 준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인물이 될 사울을 회복하실 때, 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나 요한 같은 사도들을 보내시거나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빌립 같은 사람을 보내지 않으시고 당시 무명의 아나니아를 보내셨을까요?
 바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사도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저와 같은 무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똑같이 주어진 일임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런데요. 이런 놀라운 역할을 감당했던 아나니아는 사울의 회심 이야기 가운데 등장했다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 이후에 그에 대해 어떤 것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아나니아는 비록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게 될 위대한 사도 바울을 부르시기 위해 사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신학자인 바클레이는 아나니아를 가리켜 “기독교 교회의 잊혀진 영웅들 가운데 한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나바는 또 어떠했습니까?
 사울의 회심을 의심하고 두려워했던 예루살렘교회 공동체와 사울을 연결해준 다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 사람의 평판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욱이 평판이 좋지 않던 사람들을 받아주고 믿어주고 인정해 주는 것은 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교회공동체 안에 그런 사람들이 들어올 때 그들을 믿어주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소개해주고 연결해 줄 후원자가 필요합니다.
 바나바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꺼이 사울의 후원자가 되어주었으며, 두려움과 위험을 감수하고 다리를 놓는 수고를 하였습니다.
 교회는 신앙의 연륜이 어리거나 아직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세워줄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아나니아와 바나바를 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잘 모르는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공동체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평판이 좋지 않거나 동기가 의심될 때는 더 그렇습니다.
 과거에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아본 사람들은 더 조심하고 몸을 움추립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교회공동체에 오는 모든 사람들을 진실함과 따뜻함과 친절함으로 맞아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새로운 지체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기도와 수고가 있다면, 그것을 우리가 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 교회를 나갔을 때 철없는 청소년이었습니다.
 어른들이 보면 정말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 자녀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청년 시기에는 사람들에게 좀 인정받는다고 세상모르고 방방 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시기를 기다려주고 격려해주고 도와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 때문에 오늘 제가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분들이 저를 향해 참아주고 기도해주고 격려해주는지 모릅니다. 이런 사랑이 오늘 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을 격려하고 조용히 기도하며 기다려주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고, 그런 분들 때문에 계속 우리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설교 서두에서 말씀드렸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존 스타우피츠는 독일의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진정한 복음을 깨닫고 예수님를 만나도록 도와주었던 분입니다.
 모데카이 햄은 20세기 최고의 전도자요 설교가였던 미국의 빌리 그래함 목사가 예수님을 만나도록 복음을 전해준 사람입니다.
 김순종은 델리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바울 선교사를 전도한 그의 고등학교 일 년 선배입니다.
 박용택은 저를 처음 교회로 인도하고 저에게 복음을 전해주어 제가 예수 믿도록 도와준 친구였습니다.
 이수봉은 제 아내의 작은 아버지인데 제 아내에게 복음을 전해주어 예수 믿게 한 분이십니다.
 박기호는 박성구집사님을 처음 교회에 초청하여 데려가 준 친구입니다.
 모두들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기도와 수고로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람들이 탄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기억나는 이름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갖도록 도와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준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요.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이름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다른 이들이 <나에게 예수님을 알도록 도와준 분이 ( )라>고 기억되어야 합니다.
 
 저는 카작에 있을 때 청년연합수련회에서 설교하면서 빌리 그래함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그를 얼마나 내가 존경하고 그를 닮고 싶어했는 지, 빌리 그래함이 내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빌리 그래함처럼 설교하고 싶어 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빌리 그래함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동안 실망했노라고 말했습니다.
 설교가 마친 후에 한 청년이 제게 와서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선교사님, 당신이 빌리 그래함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게는 당신이 빌리 그래함입니다>
 전 그 청년의 고백 때문에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내가 비록 빌리 그래함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 알았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비록 평범해 보이는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빌리 그래함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셔서 세계를 움직일 한 사람을 변화시키실지 모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마치면서 소망하기는, 우리 모두가 비록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 나라에 잊혀진 영웅들 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기 소망하시는 분들은 아멘합시다. 아멘.
 
 옆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한번 이야기합시다. <당신은 영웅이십니다> <우리 모두 잊혀진 영웅 가운데 하나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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