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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작성일
 
2019/06/23 17:28:17
 
조회수
17
글제목
 
사도행전 강해(7) - 교회사역의 우선순위(행6:1-7)






사도행전 강해(7)
 교회사역의 우선순위(행6:1-7)
 
 
 성령이 오셔서 이 땅에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아름답게 성장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형과 희망으로 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시작하자 이것을 시기한 사탄은 교회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사탄은 예루살렘교회에 외부적인 핍박을 주고 어려움을 주어 교회 성장을 멈추게 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하였습니다.
 사탄이 선택한 두 번째 방법은, 교회 내부적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죄의 문제로 교회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하여 성장을 멈추게 하려고 시도하였지만 그것도 실패하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외부적인 핍박과 내부적인 죄의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계속 성장하였습니다.
 이것이 4장과 5장에서 우리가 이미 살펴본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성경은 예루살렘교회 공동체를 위협할 수 있는 또 다른 한 사건을 다룹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믿음 안에서 전진할 수 있었는지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1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니”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문제의 시작은 사실 긍정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사도행전 5:42를 보면 핍박 속에서도,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과 집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쉬지 않고 가르치며 전했습니다.
 이 결과로 오늘 본문의 1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루살렘교회에 더 많아지는 축복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히브리파 유대인 신자들과 헬라파 유대인 신자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이란, 로마제국의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로써, 이스라엘로 돌아온 디아스포라 출신의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우리 표현대로 말한다면, 외국에 이민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헬라 문화를 배우고 헬라어를 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이란, 대부분 팔레스타인 출생으로 유대인의 문화를 배우며, 아람어나 히브리어를 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대 지역에서 태어나 유대에서 자라났기에,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돌아온 헬라파 사람들보다 선민의식을 더 가지고 있었고, 타민족에 더 배타적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이 두 그룹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대립 관계가 있었는데,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이런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예루살렘교회의 문제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에 대해 원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제하는 일에 있어서, 자기네 과부들이 소홀히 여김을 받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부자들이 헌금한 공동 재산을 가지고 매일 가난한 성도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는데, 히브리파 사람들에게 더 많이 돌아간다는 불평이 생긴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고의적인 것보다는, 서투른 행정과 관리 실수로 생긴 것 같아 보입니다.
 이런 불평은 처음에는 작게 시작되었지만, 빠르게 번져 나갔을 것입니다. 잘못하면 파당을 짓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교회가 분열되는 아픔을 경험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입장에서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잘못하면 교회 성도들 간에 서로 상처받고, 아름다운 교제가 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탄은 지금 사람들의 배후에서 불평과 원망을 사용하여, 교회의 아름다운 연합과 일치를 깨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교회는 분열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분이 <사탄은 북한의 교회들에게는 핍박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교회 성장을 방해하고, 남한의 교회들에게는 분열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교회 성장을 방해했다>고 말씀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 안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분열의 아픔을 보십시오. 좌우의 이념 때문에 교회가 갈라지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서로 공격함으로 상처입히고 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서로를 향한 쓴 뿌리와 원망은 아주 작아 보이지만, 공동체를 깨고 무너트리는데 아주 효과적인 방법임을 사탄은 알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의 사망원인의 일 순위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심장병, 뇌졸중, 에이즈, 당뇨, 암 같은 질병일까요?
 아닙니다. 감기입니다. 감기가 전 세계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질병 일 순위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감기는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하는 위험한 질병입니다.
 불평과 원망도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교회 공동체를 깨는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가 있습니다.
 사탄은 때때로 이렇게 사람들의 원망을 사용하여, 교회 안의 일치와 연합과 섬김을 깨트려 힘을 잃게 만들려고 합니다.
 
 이제 예루살렘교회 안에 이런 어려움이 생기자 사도들은 즉각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사도들의 해결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사도들은 교회가 무엇이 중요한지를 올바르게 결정하였습니다.
 여러분, 문제가 생길 때 사람들이 보통 취하는 가장 손쉬운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문제가 생긴 그 일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어려움이 생기면 그만두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부간에도 어려움이 생기면 헤어지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이혼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해결이 아니라 포기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생기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구제하는 일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도들은 구제하는 일을 중단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구제가 중요한 사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필요한 사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제를 중단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가 잘못했는지,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하는 문제로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려움이 생기면 누가 잘못했는가 하는 것을 찾기만 하지, 책임은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의 책임인가도 묻지 않았고, 구제를 중단하지도 않았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 문제가 단순히 구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의 문제인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2절에 사도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사도들은 봉사하는 일에 자신들의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른 일에 바쁜 나머지 말씀과 기도가 공동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자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이 문제를 깨달은 사도들은, 자신들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결정합니다.
 4절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니라”
 사도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와 말씀 사역이었습니다.
 물론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늘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힘을 다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항상, 왜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웠으며 교회 안에 사역자들을 세웠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역자들은 말씀전파와 가르침의 일을 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만약 이 사역이 다른 일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면, 교회는 이 땅에서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라는 교회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도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고, 교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결정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의 우선순위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기도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어떤 사역보다도 중요한 교회 영적 지도자들의 우선순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는 곳에, 영적으로 죽어있던 사람들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람들이 올바르게 배울 때, 믿음이 성장하며 삶 속에서 진정한 변화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한, 아무도 교회의 승리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저도 제가 목사로서 갖는 저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일과 교회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의 사역자들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는 없습니다.
 
 두 번째로, 사도들은 교회의 일군들을 세웁니다.
 사도들의 문제 해결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2절에 보면, 교회의 온 공동체를 모이게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성도들을 모아 회의에 참석하게 합니다. 교회 문제 해결을 위한 비밀회의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교회 문제의 해결은 지도자의 일이자 성도의 일입니다.
 사도들이 모든 성도를 부른 것은, 성도들을 존중히 여기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이 문제에 대해 성도들을 책망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해결 방법을 찾도록 제안합니다.
 제안한 내용이, 2-4절에 나와 있습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사도들의 이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사도들이 말하는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일곱 명의 사람을 뽑습니다.
 
 어떻게 이들을 선출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들을 뽑는 기준은 분명하였습니다. 교회의 사역을 위해 선출된 사람들은, <너희 가운데>에서 뽑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교회의 사역은 항상 교회 안의 성도들이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역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에게 맡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들 가운데 교회 사역을 맡겨야하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어떤 전문가가 아니라, 거듭나고 복음의 감격을 아는 사람들이 교회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을 즐거워하고, 하나님 뜻 앞에 온전히 순종하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일에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은 좋은 것 같은데, 지혜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때때로 비상식적인 방법을 믿음이라고 밀어붙이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는 많으나 성령 충만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지혜가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일군의 내적 증거입니다.
 교회의 일군이 되는 것은 꼭 많이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일군이 되는 것은 꼭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적인 직위나 재력이나 어떤 뛰어난 재능보다도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교회의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일군의 조건은 <칭찬 듣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평판이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 사역을 위해 선출된 사람들은, 교회 내부의 성도들에게 칭찬을 들을 뿐 아니라, 교회 밖의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들어야합니다. 이것은 일군의 외적 조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 앞에 온전히 순종하고, 다른 이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역하는 사람이 더 중요한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신앙생활의 오랜 연륜으로 만들어지나요? 시간이 만들어줍니까? 교회에서 봉사한 것들이 만들어줍니까? 직분이 만들어주나요?
 말씀과 기도 안에서 씨름하고 싸워오신 분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고, 지혜로운 사람이며 칭찬 듣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시각으로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셋째로, 사도들은 사역을 함께 합니다.
 3절 하반부에 보면,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6절은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사도들이 안수한다는 것은 사역을 위임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들이 안수하였기에 사도들이 성도들보다 더 높은 직책이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종종 아주 위험한 생각들을 갖게 합니다. 목사가 평신도보다 위라고 생각하거나, 우리에게 섬기라고 주신 직분을 계급처럼 생각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교회 안의 많은 성도들이 잘못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안수는 다만 교회 안에서 사역을 위임하기 위한 공식적인 행위였습니다.
 1절과 4절의 <구제와 말씀의 사역(섬김)>이라는 단어는 모두 <디아코니아>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설교하는 일이나, 봉사의 섬김이나 똑같은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어떤 사역도 다른 사역보다 우월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은 교회를 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몸에는 여러 기능들이 있습니다. 입, 손, 발이 하는 일이 다 다릅니다.
 바울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하거나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몸의 모든 기능들은 모두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 더 중요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기능과 역할의 차이가 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주께서는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저는 목사도 기능적인 은사라고 믿습니다. 이 은사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누구의 사역이 더 중요한가가 아니라, 서로의 사역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사역을 함께 감당해야합니다.
 
 그런데 오늘 대부분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목사나 소수 몇몇의 일군들이 사역하고, 대부분의 성도들은 관중의 태도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잘 뛰라고 박수치고, 응원하는 것이 성도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배 후에는 시합이 끝난 경기처럼 평가하고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영적 지도자들이 교회 안의 모든 일들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에베소서 4:11-12은“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목사들의 역할은, 사역을 할 성도들을 훈련하는 코치와 같은 역할이지, 목사가 직접 뛰는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어린이 주일 행사를 보고 느낀 마음)
 
 우리 교회 홈페이지 화면 자막에 나오는 글을 주의 깊게 읽어보셨나요?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섬기는 사역자는 모든 성도입니다. 목회자는 모든 성도를 사역자가 되도록 훈련하는 훈련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목사와 교회의 평신도들의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평신도들이 전방에 배치된 군인들이 되어야 하며, 목사들은 평신도들을 훈련하고 지원하고 돕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로서 꿈꾸는 영광은, 제가 섬기는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저와 같은 목사로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 안의 목사이며, 여러분은 세상 속에 파송한 목사들입니다.
 
 이제 이 일곱 명의 사역자들에게 교회의 구제 사역을 맡기고 사도들은 자신들의 중요한 사역인 말씀전파와 기도에 전념하기로 합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이 일곱 명의 사역자들을 교회 안의 첫 번째 집사들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집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집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일곱 명이 모두 교회의 사역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들도 모두 말씀과 기도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목회자니 평신도니 하는 직책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역들을 감당하고, 충성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일군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교회 안의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어린 신자들을 돌보며,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교회의 지체들이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역할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교회는 더 견고해져 가는 것을 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이런 충성된 일군들이 계속 세워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올바른 결정을 하였을 때,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7절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다”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올바른 결정과 선택을 하였을 때 교회는 계속 부흥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널리 퍼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루살렘교회가 조직에 변화를 주자 제자의 수가 더 많아졌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회복해야 할 우선순위인 말씀과 기도 앞으로 돌아오자, 말씀의 은혜가 넘치고 사람들이 그 말씀 앞에 서기 시작하자, 교회는 다시 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의 은혜 안에 살도록 도와야 합니다.
 아모스서 8:11을 보면, “양식이 없어 기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고 분명하게 가르치는 일에 실패한다면, 이 세상은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앞에 진지하게 서서 고민하고 말씀을 따라가려는 몸부림이 없다면 우리 교회도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조직을 새롭게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마음을 쏟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가 살아 움직이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불평과 원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표현하지는 않지만 지체들의 교제 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의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새로운 조직이 해결해 줄까요? 더 믿음이 좋은 사람이 오면 해결될까요? 어떤 좋은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할까요?
 다 필요한 것들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말씀과 기도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안에 있을 때 해결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사모하십시오.
 공적 예배에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목마른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고 기대하십시오. 개인적으로 성경을 펴서 읽으셔야 합니다.
 읽은 성경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 말씀과 함께 기도가 강조되었나요?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전파될 때 기도 없이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말씀과 기도가 다시 회복되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의 삶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한 개인의 신앙의 건강함은, 그 사람의 삶 속에 말씀과 기도가 얼마만큼 살아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교회 공동체는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순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본질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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