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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작성일
 
2019/06/17 00:38:46
 
조회수
23
글제목
 
사도행전 강해(6) - 교회의 순결(행4:32-5:11)






사도행전 강해(6)
 교회의 순결(행4:32-5:11)
 
 
 우리는 이미 4장에서 사탄이 교회의 성장을 방해하려고 외부적인 핍박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핍박과 고난이 통하지 않자, 사탄은 전략을 바꿉니다.
 교회 내부에 죄를 심어, 교회가 거룩함을 잃어버려 능력을 상실하도록 계획을 바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입니다.
 사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죽음은 초대교회에 큰 슬픔의 사건이었습니다. 불행한 사건이었으며, 감추었으면 하는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직하게 이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장 후반부에 보면,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의 물건들을 나누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교회에 헌금하기도 하였습니다.(4:34-35)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4:36-37).
 이런 행동은 누가 시키거나 강제로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헌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도들의 헌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행위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자신들도 이런 칭찬을 듣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밭을 팔아서 그 돈의 일부를 감추고, 마치 전부인 것처럼 교회에 헌금했던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이 부부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그냥 피상적으로 읽으면 하나님의 징계가 좀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거짓말 좀 했다고 죽이나>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을 쉽게 하고, 거짓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문화에 사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한국 문화도 거짓말을 그리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인도 사람들도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쉽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양문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체면을 위한 거짓말은 쉽게 용인해 주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 교회도 술이나 도박 같은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거짓말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가 헌금을 일부만 드렸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가가 지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 사건을 기록한 목적은, <하나님께 드릴 것을 제대로 안 드리면 죽는다>라는 것을 보여줌으로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들은 이 사건을 해석하며, 가끔 이런 정신 나간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자기들의 소유를 팔아, 판 돈의 일부를 헌금하였습니다. 그들이 일부를 가져왔다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땅을 팔아 일부라도 헌금했다는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문제는 적게 헌금했다는 것도 아니요, 일부를 헌금했기 때문도 아니라, 속임수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우발적인 속임수가 아니라, 교회의 다른 성도들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 계획적인 거짓의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일부를 헌금하면서 마치 전부인 것처럼 거짓 행동했던 것, 이것이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였습니다.
 
 4절을 보면, 이것은 단순히 사람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려고 한 행동이라고 베드로는 책망합니다.
 더욱이 이런 죄의 문제의 배후에는 교회를 무너트리려고 하는 사탄이 있었습니다.
 성경의 많은 사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본문에 나타난 이 사건도 하나의 본보기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가 초대교회의 부끄러운 이 사건을 기록한 것은, 교회가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의 거룩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첫 번째로, 이 사건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성경은 항상 하나님은 진리이시며, 거짓을 미워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시라고 가르칩니다.
 시편 5:4,6은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반면에 성경은 사탄을 <거짓말하는 자>로 묘사합니다.
 요한복음 8:44에 보면, 사탄을 가리켜서 <...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짓말을 할 때, 그것은 그 순간 우리의 삶이 사탄의 지배 아래 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말은, 단순히 베드로에게 나 교회 공동체에 거짓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짓말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말에는 사탄이 마음에 가득하여 교회를 공격하려는 교묘한 활동이 있었습니다.(3절).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하나님 앞에서와, 그분의 교회 앞에서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였기에 심판받은 것입니다.
 어떤 분은 <거짓말 한번 했다고 죽는다면, 도대체 예수 믿고 거짓말 한 번 안 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분들은 이 사건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너무 무자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강조할 때, 우리는 그분의 거룩하심을 함께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놀랍게 생각해야 할 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교회의 거룩함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역사 속에 이 사건은 주님이 공동체에 말씀하시는 특별한 교훈이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가 거룩함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뼈를 깎는 고통이 있고,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더라도 교회는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성령께서 회개하지 않은 이 죄를 교회에서 제거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함부러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심각한 문제는 목사들이, 성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돈이 권력이 되고 재물이 왕 노릇 합니다.
 정말 교회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공동체인 교회도 거룩해야 합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이 사건은 우리가 무엇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아마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4장에서 보여준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교회에 헌금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을 보고, 그들도 칭찬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바나바의 헌신에 다른 성도들이 칭찬하는 것을 보고 인간적인 질투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바나바처럼 헌금하면 다른 사람들이 칭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순수하지 않은 마음으로, 잘못된 동기로 헌금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이들 부부는 판 돈의 일부를 감춥니다.
 여기 <감추다>는 단어의 뜻은, <횡령하다>, <훔치다>, <슬쩍 착복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성경이 이런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을 팔기 전에, 사도들과 사람들에게 땅을 팔아 전부를 바치겠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의 마음에는 누구보다 자신들이 더 헌신적인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바치니 체면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했다가, 실제로 아까워서 일부를 감추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니 이들 부부는 함께 죄를 공모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함께 의논하고, 함께 행동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이라고 하였습니다.(창2:18).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상대방의 연약함을 도우고 세워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남편이 연약한 모습을 보일 때 옆에서 인내하고 기다려주는 아내는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아내가 연약할 때 옆에서 함께 해주며 도와주는 남편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그런데 오늘 이 부부는 서로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망하는데 협력하고 있습니다.
 만일 아나니아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때, 그의 아내인 삽비라가 올바르게 이야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일 삽비라가 잘못된 방법을 제안했을 때, 남편인 아나니아가 반대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부부처럼 같아지기 쉬운 그룹이 있을까요? 부부는 이 땅에서 가장 닮기 쉬운 가까운 존재입니다.
 정말 한 사람만이라도 정신 차리고 있었다면 심판을 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부부 중에 한 사람만이라도 영적으로 깨어 있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었다면 이런 엄청난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서로 세워주고 격려해 줄 수 있는 남편과 아내가 필요합니다. 잘못된 길을 걸으려고 할 때 경고해 주는 남편과 아내가 필요합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좋은 형제자매들을 만나 결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신앙 안에서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는 부부는 정말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런 부부가 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회개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계속 거짓말을 하였던 것입니다(8절).
 만일 그들이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고 회개하였다면, 용서 받았을 것입니다. 주어진 회개의 기회를 거부하였을 때 그들은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것입니다.
 
 아나니아의 헌신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었습니다. 이렇게 순수하지 않은 동기는 하나님 보실 때 합당한 헌신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는 자들에게 마태복음 6:1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말할 때나 행동할 때, 그 동기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동기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게 되면, 우리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위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보다 인간을 더 의식하고, 위선의 죄를 지었을 때 이런 결과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의 말과 행동의 동기는 무엇인가? 살아계신 하나님이신가? 내 주변의 사람들인가? 아니면 나 자신의 의로움인가?
 
 세 번째 이 사건은, 성령께서 교회의 순결과 거룩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밖에서 오는 위협과 공격은 때로 우리가 쉽게 알아채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부에서 일어나는 위험은, 훨씬 미묘하고 알아내기가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아도, 교회는 밖의 공격보다는 내부적인 위험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어린아이 같은 상태입니다. 비록 크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상태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배우는 것들은 평생 그들의 인생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교육 학자들은, 어린아이 때 배운 것이 평생의 인격과 삶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도 인기리에 팔린 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잘못 배우면 평생 그것이 남는다고 합니다.
 
 만일 어린아이와 같은 교회에 속임수와 도덕적인 부패가 들어온다면, 예루살렘 교회의 미래는 어둡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생명을 죽이면서까지, 교회의 거룩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아픈 사건을 통해서 성령께서는 교회의 순결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신앙은 고백하였지만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과, 죄를 짓지만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계속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죄를 계속 짓고 회개하지 않는 성도들을 계속 기도하며, 그들을 권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의 성도들의 죄는 해결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죄는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하며, 공개적인 죄는 공개적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백하지 않고, 죄를 계속 가지고 있을 때, 사탄은 그것을 통하여 교회 공동체를 약하게 할 것입니다.
 죄는 우리 개인에게 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막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만일 해결되지 않은 죄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 자백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우리 지체들 안에 어떤 연약함들이 드러난다면, 그것을 발견하신 분들은 이야기꺼리와 비난의 말들을 멈추고,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제가 부탁드리는 것은, 교회 안에서 서로의 연약함을 볼 때 그것을 가십거리로 삼지 마시고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서로의 사랑과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용서받은 죄인들이며, 주님의 은혜 때문에 살고 있지, 우리의 의 때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는 늘 기도하기를, 우리 공동체 안에 어떤 죄들이 있다면 그것이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의 은혜로 용서되고 회복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순결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교회가 만일 내부적인 죄와 싸우지 않고 적당히 타협한다면, 교회는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능력은 상실되게 될 것입니다.
 교회 역사 속에 항상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교회와 깨끗한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교회는 얼마나 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가 보다, 얼마나 거룩한 사람들이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얼마나 큰 그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주님 사용하시기에 깨끗한 그릇인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가슴 아픈 사건은 우리에게 교회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천국을 보여주는 모형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에 정말 저주받아 심장마비든 벼락을 맞든, 죽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누구겠습니까?
 예수님을 죽인 대제사장 가야바나, 로마 총독 빌라도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 무리들 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었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주를 믿는 백성이었습니다. 교회 안에 핵심적인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속였지만 그들은 땅을 팔아 헌금을 낼만큼 헌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죽어야 했습니까?
 3절에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성령을 속이고>라는 말씀에 대답이 있습니다.
 지금 사탄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해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망가트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요?
 돈으로 하고 있습니다. <돈을 내면 인정받는구나> 생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돈이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돈으로 교회에서 명예과 권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 돈은 또 다른 권력입니다.
 이 세상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세상의 가치와 기준과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이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우리가 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예배하러 옵니까?
 따로 구별된 이 시간에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둠으로, 나의 모든 시간이 다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왜 예배 시간에 헌금을 합니까? 헌금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고백하는 예배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탄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사용하여 교회에 하나님의 통치가 아닌 인간의 방법이 통하도록 하려고 한 것입니다.
 돈을 내면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돈을 내면 교회가 인정해주는구나 하는 잘못된 세상 가치를 교회 안에 들어오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돈으로 사도들도 교회 공동체도 속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행동을 심판하시면서 교회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건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교회를 두려워했습니다.
 오늘 이 사건은 우리에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교회 공동체의 몸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세상은 교회를 향해 비난합니다.
 대형교회의 세습이나 교회의 부정직한 모습이나, 요즘은 정신 나간 한 정치 목사 때문에 한국이 난리가 났습니다.
 오늘 교회 안의 그리스도인들도 비난의 목소리에 쉽게 합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속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향해 욕하니까, 부끄러워서 교회가 욕 안 먹기 위해서 뭘 자꾸 하려고 합니다.
 어떤 교회는 사회적인 지탄을 받으니까, 회개하지 않고 대신 해외에서 1000개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공언합니다. 가난한 국내 교회들을 지원하겠다고 말합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복지관을 운영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이렇게 좋은 일 하는데 왜 비난하냐고 말합니다.
 물론 교회는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한 일이 우리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좋은 일이 교회의 존재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정직, 도덕성, 선한 행위,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이상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문화나 방법, 가치관이 교회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주님이 온전히 다스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통치와 인도는 피해 가면서 뭔가 선한 것으로 포장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을 바꾸는 죄악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핵심입니다.
 
 혹시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마음이 불편하십니까?
 기억하십시오. 공동체의 거룩은 우리 각 개인을 다스리시는 성령님의 통치 앞에 순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교회의 거룩을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살지 못했다면 오늘부터 시작하십시오.
 오늘부터 하나님께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결심을 말씀드리십시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쉽게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을 고치겠다고 말씀드리십시오. 게으르다면 그것을 고치겠다고 말씀드리십시오. 나쁜 생각을 많이 한다면 버리겠다고 말씀드리십시오.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감사의 마음을 갖겠다고 말씀드리십시오. 정직하게 헌금하지 않는다면 정직하게 헌금하겠다고 말씀드리십시오. 욕심이 많으면 욕심을 버리겠다고 말씀드리고, 교만하면 겸손하게 해달라고 말씀드리십시오.
 쉽게 화를 낸다면, 남들이 모르는 나쁜 습관이 있다면, 버리겠다고 말씀드리십시오. 주님의 도우심을 요청하십시오.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드라마나 영화 같은 세상적인 것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고 있다면 이제 성경을 읽고 기도하겠다고 결심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버리고 비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영혼에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기도하십시오. 기도와 말씀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우리 다 같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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