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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작성일
 
2019/06/12 11:54:05
 
조회수
37
글제목
 
사도행전 강해(4) - 교회가 주어야 할 것(행3:1-10)






사도행전 강해(4)
 교회가 진정으로 주어야 할 것(행3:1-10)
 
 
 인도에 손님이 오실 때마다 종종 모시고 가는 곳 가운데 하나는 이 땅의 종교시설입니다.
 힌두교 사원이나 이슬람 사원을 보여드리고 소개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한결같이 공통적으로 보는 것은 입구에 서 있는 구걸하는 거지들입니다.
 그들은 입구에 서서 사원에 오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종교적인 시설에 오는 사람들이, 마음에 긍휼과 보상심리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줄 것이라고 거지들은 생각하고 거기 모여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비슷한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도행전 1-2장에서 교회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이 땅에 새로 탄생한 교회의 모습은 어떠했는가를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가 진정으로 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기 원합니다.
 
 이제 본문을 보겠습니다.
 1-2절입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오는데, 성전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한 앉은뱅이와 그를 도와주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사도들의 모습입니다.
 
 첫 번째, 나면서 못 걷게 된 앉은뱅이인 거지를 보겠습니다.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이 사람은 거지였습니다. 아마도 부모가 가난하여 유산을 물려주거나 어떤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적어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원이나 능력으로는 스스로를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도 칭찬할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앉은뱅이에 거지였지만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는 장소를 잘 선택했는데 성전의 미문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문 앞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2절b).
 성전의 미문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문이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고, 사람들의 동정심을 느끼게 하여 많은 적선을 하게 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부지런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니 그는 날마다 나와 앉아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혜와 부지런함도 그의 삶을 바꾸어 놓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는 날마다 거지였습니다. 그저 소망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거지일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왜 그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앉은뱅이이기에 일어나 걷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기에 자신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기대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기대는 아예 포기한 상태일 것입니다.
 사도행전 4:22을 보면 그의 나이는 약 40세를 전후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40년 동안 그는 <내 삶에 무슨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겠는가? 내 인생에 무슨 기적이 일어나겠는가?> 하고 포기한 상태에서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포기한 이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본문을 보면, 성전 입구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는 하나님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마도 <배부르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성전에 들어가서 찬송하고 예배하는 것이지, 하루 먹고 살기 바쁜 나 같은 사람들에게 무슨 예배인가>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 거지에게는 하나님보다는 사람들이 주는 한 푼의 돈이 더 중요했을 것입니다.
 
 사실 오늘 이 앉은뱅이 거지의 모습은 하나님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앉은뱅이처럼 영적으로 마비되어, 자신에게 무엇이 정말 필요한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오늘 우리 주변에도 얼마나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까?
 오직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우기에 바빠 하나님을 쉽게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삽니다.
 (한 신혼부부의 후회/은퇴 후에 화장실 숫자 늘이다 인생을 다 보냈다고 늦은 후회를 가짐/아들이 의대에 갔지만 신앙을 잃어버려 안타까워하는 권사님의 고백)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나님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 하나님 없이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무언가를 채우는 것은 오직 우리 인생을 공허하게 할 뿐입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 거지처럼 아무런 기대 없이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 번째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 거지를 매일 성전 앞에 메고 데려다주는 도움을 준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메어 다 주는 사람들이 가족인지 친구인지 이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날마다 이렇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마음이 착한 사람들입니다.
 성전에 날마다 예배하러 드나드는 사람들 중에, 아마 어떤 사람들은 거지를 볼 때 귀찮아 돈 몇 푼 던져주고 가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말 불쌍한 마음으로 매번 지나갈 때마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종교적인 의무감 때문에 돈을 주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앉은뱅이 거지를 날마다 미문 앞에 데려다주는 이 사람들은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입니까?
 
 인도에 와서 살다 보면,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때로는 화가 나고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교차로마다 서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잘 때가 없어 길 위에 그냥 누워 자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주는 몇 푼의 돈이 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엄청난 가난의 짐을 짊어지고 사는 이들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서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인도에 있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을 다 책임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 친절과 자비를 베풀 수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남들보다 우리가 더 가졌다면, 더 가진 우리가 나누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가능한 많은 것들을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가 이곳에 있어야 할 마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어야 할 것을 단지 물질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제 제자 중에 한명은 역전이나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에게 음식과 약을 제공하는 선교단체에서 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자신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어 넉넉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도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자매를 보면 참 마음이 안쓰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세상적인 시각에서 보면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몸으로 보여주며 복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세상은 정말 자기들에게 진정으로 무엇이 결핍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중요한 책임입니다.
 앉은뱅이를 미문 앞에 데려다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섬김과 구제,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사역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역이 무엇인지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통해 보겠습니다.
 
 세 번째는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정기적인 기도시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제9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순절 날 성령 충만을 경험한 사람이지만 여전히 기도 생활을 충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해 줍니까?
 우리는 매 순간, 매일 성령님과 동행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번 경험한 성령 충만이 오늘을 살게 하고 내일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루 종일 굶고 그 다음 날 폭식하면 안 되는 것처럼, 운동한다고 결심하고 몰아서 무리하게 운동했다가 다쳐 다음 날 병원 신세를 지는 어리석음을 가지지 말아야 할 것처럼, 우리는 매일 꾸준히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 충만을 우리가 계속 지속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물론 성령을 충만하게 경험하였지만 계속 성령 충만을 유지하기 위해 기도와 예배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칠 때, 우리가 포기하고 싶어질 때,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를 다시 강하게 하는 것은 기도와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 생활이 바쁘더라도, 기도와 예배는 포기할 수 없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우선순위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교제하기 위해 정기적인 기도시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몇 분이라도 매일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에 예배를 드리지만, 또한 예배를 통해 우리도 새로운 힘을 공급받고 또 한 주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순서가 바뀌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만나지 않고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이웃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가려고 할 때 거지가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구걸합니다.
 아마도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구걸하는 사람의 불쌍한 얼굴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사람을 귀찮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불편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하러 성전으로 가고 있는 중인데 이 계획과 목적을 방해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거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6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거지는 단순히 약간의 돈을 줄 것인가 하고 관심 있게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은과 금이 없다는 말에 실망하였을 것입니다. 줄 것도 없으면서 왜 쳐다 본거야 하고 짜증도 났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거지의 인생에 더 중요하게 줄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18은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가치를 알고 있었던 베드로와 요한은 이것이 이 사람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비록 자신들이 줄 돈은 없었지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 거지에게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 오해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구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분명한 정치적 색깔을 가지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가 더 많은 문화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사역들이 교회에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근원적인 진짜 문제를 다루는 것에 있습니다.
 교회는 문화 센터나 상담소나 구제소가 아니라 영혼을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곳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지성이나 감정이 아니라 영혼에 있습니다.
 영혼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이며, 삶의 중심입니다.
 영혼의 마비는 곧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입니다.
 오늘 세상의 문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죄로부터 구원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제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한 말을 들었습니다. 앉은뱅이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뿐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를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받기 위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 무언가를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보십시오. 앉은뱅이는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라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말씀 때문에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셔야 합니다.
 
 오늘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에게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더 원하십니까? 돈을 더 벌기 원하시나요? 더 높은 직위에 올라가야 합니까?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축복은 이런 것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더 가지고 더 잘 되고 더 욕심내는 욕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 주변의 메시지는 네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라고 소리치지만, 하나님 없이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진정으로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서 무언가를 성취하여 내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도 그것은 공허하고 실패할 뿐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만나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오히려 하나님을 거부하고 떠나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와 주셨고 그분의 구원의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능력이 이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의 가장 존귀한 분이시며, 가장 놀라운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저에게는 어릴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몇 명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친구였습니다.
 전 어느 날 그에게 <난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만일 너를 정말 사랑한다면 내 인생에 가장 좋은 분을 너에게 소개해야 하는데, 나는 혹시 네가 그것 때문에 불편해하며 나와의 관계가 깨어질까봐 두려워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해질까봐 예수님을 나누는 것을 주저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방학을 맞이하여 많은 가족들이 한국을 방문합니다. 한국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도 살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 가족들에게 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셔야 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무시당하고 얼굴을 붉히더라도 정말 하나님이 주고 싶은 것을 주어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분만이 구원자이며 소망이 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마음이 아픈 것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성적이나 취직은 걱정하면서 그들의 신앙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남편의 구원문제 때문에 아파하지를 않습니다. 나이 들어가는 부모의 건강은 걱정하면서 그들의 영혼의 구원문제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일상 속에서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 생의 가장 귀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 가족들과 이웃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어도...>
 우리가 비록 은과 금은 없어도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과 금에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두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은과 금은 없어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역사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거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영적으로 앉은뱅이는 아닌가요? 무언가에 잡혀있는 영적 마비 상태인가요? 일어나셔야 합니다.
 우리는 이 영적 마비로부터, 영적인 앉은뱅이로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인가요? 아니면 변화에 대한 두려움입니까?
 아마 여러분들 중에도 오랜 시간 영적으로 마비되어 앉아 있었기 때문에 아예 포기하고 일어나려고 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일어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미는 손을 다시 잡으셔야 합니다. 그 손을 잡으십시오. 여러분을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셔서 걷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십시오.
 여러분들에게 일어난 일들로 하여금 사람들이 놀라게 하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앉아있지 마십시오. 우리에겐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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