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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작성일
 
2019/06/12 11:52:39
 
조회수
44
글제목
 
사도행전 강해(3) - 첫 교회의 모습(행2:42-47)






사도행전 강해(3)
  첫 교회의 모습(행2:42-47)
 
 
 우리는 지난주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교회가 탄생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외부 사람들은 놀랐고, 베드로는 그들에게 왜 이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베드로는 이 질문에 <...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권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침례 받음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날 예루살렘에 모였던 사람들 중에서 3,000명이 넘는 이들이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셔드리고 감격가운데 헤어졌습니다.
 그날 밤 그들이 모인 장소는 서로의 감격과 기쁨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첫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 이 사람들은 성전 뒤편에 있는 솔로몬 행각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에 적당한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매일 모여 사도들로부터 전달되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사람들은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들 왔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나? 다시 일상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남기로 결심합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사도들이 요청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발적으로 예수를 더 알기 원했고, 믿는 자들의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으로 남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함께 무엇을 하였을까요? 그리고 무엇을 이루어가기를 원했을까요?
 
 이제 본문을 보겠습니다.
 42절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첫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첫 교회 공동체의 모습의 특징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그들은 사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직접 생활하며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의 삶을 직접 목격한 사도들로부터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과 교훈을 들었을 것입니다.
 4:1-2의 말씀을 보면,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였다.”는 것을 볼 때, 특별히 강조된 가르침의 핵심은 부활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예수님의 삶과 그분이 하신 말씀을 들으면서, 그분의 제자로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자신들의 결심과 고백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예언의 성취가 어떻게 예수님께 이루어졌는가를 들었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읽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메시아 예언이 예수님에 의해 성취됨을 배웠을 것입니다.
 이렇게 새롭게 예수 믿은 사람들이 영적 지도자들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우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하며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배우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디모데후서 3:14-17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뿐 아니라, 날마다 우리의 삶의 길잡이이십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의 대답을 주십니다.
 
 오늘 사람들은 뭔가 얻을 수 있는 책을 원합니다.
 유용한 정보가 있는지,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는지, 성공하거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론을 발견할 수 있는지, 더 행복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지, 아니면 시간을 때울 만한 재미가 있는 책을 원합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의 유익이 실제로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유보다 성경이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그분이 누구신지, 그분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우리를 초청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게 됩니다.
 구원의 감격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의미가 있으며, 우리의 인생이 왜 가치가 있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이 시대의 특징은 다원주의입니다.
 절대적인 진리는 없으며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올바른 기준을 잃어버렸고, 이제는 자신이 옳고 그름의 잣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성도착증이 성적 취향으로 인정받고, 어린 아기를 학대하는 것에 분노하는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신 안에 있는 태아를 죽이는 것은 여성의 자기 선택의 권리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방향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바뀌어도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35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영원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기준은 하나뿐입니다. 성경이 우리 삶의 지표요 인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가지고 알고 있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 가장 완전하고 좋은 안내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 동안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인도에 와서 한인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제가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교인들이 성경을 너무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읽거나, 공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사실 때문에 가능하면 우리 교회는 다른 것보다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데 강조점을 두려고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거의 매일 성경을 배우는 시간이 있습니다.
 성경 공부하는 분들은 왜 이렇게 좋고 재미있는 성경공부 모임에 안 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저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지체들이 매일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시면 좋겠습니다.
 언제든지 요청하시면 기쁨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사도행전 17:11은,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베뢰아 사람들처럼 성경을 사랑하여 성경을 공부하는 성경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그들은 모여 서로 교제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처음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 그들은 서로를 사귀며 함께 떡을 떼고 기도하는 일에 힘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6절에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식적인 예배와 비공식적인 가정 모임을 통해 모이기를 힘썼으며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제하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어떤 이들은 교제를 단순히 차나 커피를 마시면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예배 중에, 예배가 끝난 후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악수하며 안부를 묻는 정도로 이해합니다.
 한 셀의 이런 모습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한 형제가 갑자기 지난주에 보았던 영국 프리미엄 리그를 화제로 삼아 이야기합니다. 손홍민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형제들이 서로 칭찬하며 대화가 진행됩니다.
 갑자기 손홍민으로 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국가대표팀 벤투 감독의 지도력과, 포루투칼에서 뛰고 있는 이강인 선수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다가, 류현진 선수의 야구로 화제가 바뀝니다.
 스포츠에 별로 관심이 없던 한 자매가 보았던 드라마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느덧 한쪽에서는 스포츠 이야기로, 한쪽에서는 드라마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한 집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나?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모두 목자의 환송을 받으며 떠날 때, 한 집사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십니다. <우리 셀 교제는 참 좋아>
 이것이 교제일까요? 물론 이런 대화와 즐거움이 문제가 있거나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교제로서는 무언가가 빠진 것 같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제라는 단어가 이 정도의 의미일까요?
 이런 것들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제란 무엇일까요?
 
 오늘 성경이 보여주시는 초대 교회의 교제의 중심에는 함께 떡을 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떡을 뗀다는 것은, 함께 식사하며 식사 중에 성찬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교제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행하면서, 우리 모임과 대화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찬식을 행하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 삶의 중심이며, 우리 공동체의 연합의 근거임을 고백하는 행위였습니다.
 우리가 모이는 이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성찬식을 행하면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증인으로 살 것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떡을 떼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한 가족이요 한 몸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그들의 교제의 중심은 기도였습니다. 모여서 그들은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초대 교회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 참된 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기도였습니다.
 기도란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만은 아닙니다. 단순히 무릎을 꿇고 자기 열망과 소망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란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도란, 하나님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 가운데 그분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내 자신의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않으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그냥 하나님 없이 내 힘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5은,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진정으로 깨닫는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유익을 주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교제하려고 얼마나 노력합니까?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 생활은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귀하에 여기는지, 좋아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교제의 중요성을 모닥불로 비유하였습니다.
 나무 하나만 있으면 타다가 꺼져버리지만, 그 나무들이 모여 있으면 불이 활활 타고 끝까지 탑니다.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혼자 있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힘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다른 지체들과 함께 격려하고, 서로의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고 기도할 때 힘을 얻는 것입니다.
 전도서 4:9-12은 교제의 힘의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다 같이 읽겠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히브리서 10:24-25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권면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영적인 책임입니다.
 저도 처음 교회를 출석했을 때 제 주변에 저를 도와주는 친구들과 영적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도움으로 저는 믿음 안에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을 때 하나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가족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홀로 신앙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나만 신앙 생활 잘하면 되지>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함께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가 셀 모임을 강조하는 것도 그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셀 모임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도 함께 가는 것이 가족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5에서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가 유익하기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필수적인 부분이기에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가족입니다.
 
 세 번째로, 그들은 온 백성에게 칭찬을 들었습니다.
 47절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이 교제의 중심이었으며, 그분을 찬양하는 일에 마음을 다했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교회>라는 단어가 설명해주듯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부름 받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과거에 자신들이 살던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곳에서부터 나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로 옮겨온 것입니다.
 전혀 과거와 다른 인생을 살았으며,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과 구별을 선언하고, 세상의 영향을 받았던 삶에서, 이제 세상을 도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칭찬한 특별한 이유는 나눔과 접대였습니다.
 
 44-45절을 보겠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순간에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여행 올 때 가지고 온 재정이 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지나면서 재정이 바닥이 나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 빨리 재정적인 문제가 닥쳐왔을 것입니다. 먹는 것과 자는 숙식의 문제가 가장 빨리 찾아온 어려움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일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숙식 문제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때 누군가가 자기 집을 다른 도시에서 온 지체들을 위해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집에 있는 먹을 것을 꺼내놓고 함께 식사하기 시작합니다.
 집안의 공간이 부족 하자 꼭 필요하지 않은 가구들을 내놓고 처분하기 시작합니다. 부자들은 자기가 가진 것들을 팔아 교회 앞에 헌납합니다. 숙식 문제는 이렇게 해결되었습니다.
 3,000명의 새로운 회심자들은, 예루살렘에 이미 거주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집과 일터와 재정을 기꺼이 내어놓음으로 해결된 것입니다.
 이들은 누가 명령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일에 물건을 서로 나누고 집을 개방하였습니다.
 이들이 물건을 서로 나눌 때 부자들은 교만하지 않았으며, 가난한 자들은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교회 공동체 안의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풍요를 위한 외적인 조건들이 그들의 인생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각자가 자신의 소유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지만, 교회 안에 궁핍한 자가 생기면 기꺼이 나누어 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권고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기쁨과 복음의 감격을 가지고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재물로 섬겼습니다.
 사랑의 나눔과 포기는 초대 교회가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삶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당시의 사회 속에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모습으로 보여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로 인해 교회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는 단순히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는데 강조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필요에 의해 나눈 것이지, 단지 양적으로 공평하기 위해 똑같이 나눈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배워야 할 것은,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공산주의적 나눔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보고, 내 것을 포기하고 드리는 섬김의 태도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이들을 섬기기 위해서 자신의 집을 기꺼이 개방하였습니다.
 현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개방하는 것에 어려움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집 안에 있는 빈약한 가구를 부끄러워 하거나, 음식을 잘 만들지 못하기에 손님 초대하는 것을 꺼리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집을 정리해야 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치우는데 필요한 시간과 힘을 사용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집을 개방하고 섬기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보여주거나 많은 음식을 주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따뜻하게 환영해 주는 마음에 있습니다.
 아무리 멋진 집에 고급스러운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환영받는 느낌이 없다면 그 집은 불편할 뿐입니다.
 그러나 작고 보잘것없는 집에 내어놓는 것이 물 한잔이라도 진심 어린 환영이 있다면 그 집에서 나눈 교제는 그 어떤 것보다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 집을 개방하는 데 있어서 자매들이 더 수고를 많이 합니다. 제 아내도 사람들을 접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준비해야 하고, 사람들이 돌아간 이후에 그것을 치워야 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저도 도와주지만 아내의 수고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때로는 정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시간에 갑자기 손님들이 올 수도 있습니다.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그래도 저희에게는 환영과 교제의 즐거움이 우선입니다.
 제가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저의 영적지도자들의 집에서 배웠던 것을 저도 결혼한 이후에 저의 집에 오는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집을 개방함으로 많은 이들을 섬길 수 있었고, 특별히 복음을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함께 살면서 젊은이들을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훈련하는 특권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집에 사느냐가, 얼마나 고급스러운 가구를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집을 얼마나 주님과 이웃을 위해 개방하고 드리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제 예루살렘 교회가 이런 아름다운 삶과 모습을 보이자, 주변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칭찬하기 시작합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이 땅에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영광을 높이며, 우리의 삶의 고백을 통해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세상의 기준보다 더 선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16은,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교회가 백성들로부터 칭찬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되고, 복음의 능력을 믿는 삶으로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주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이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초대 교회의 첫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왜 매일 이렇게 모였을까요? 왜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불편한 가운데 예루살렘에 남았을까요? 왜 자신들의 집을 개방하고 자신의 것들을 기꺼이 나누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가지입니다.
 성령의 은혜 때문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감당할 수 없는 기쁨 때문이었습니다. 구원의 감격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초대 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이런 삶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매일 모이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집을 내어놓자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 때려치우고 하던 일들 멈추고 모여서 기도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이런 기쁨과 삶의 원동력이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우리도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성령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더 좋은 장소,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 더 좋은 프로그램도 필요하고 좋지만, 정말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은 성령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꿈꾸시고 세워가기 원하셨던 교회와, 역사 속에 수없이 있었던 주님의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교회, 성령의 다스림이 드러나는 교회, 성령의 은혜가 삶의 중심이 되는 교회, 그 감격 때문에 모여 예배하고 서로 나누고 사랑하는 교회.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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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강해(5) -교회 핍박의 시작(행4:1-37)

김기태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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