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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작성일
 
2019/06/12 11:51:42
 
조회수
1
글제목
 
사도행전 강해(2) - 교회의 탄생(행2:1-42)






사도행전 강해(2)
  교회의 탄생(행2:1-42)
 
 
 한번은 셀 모임에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가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기쁨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나누는데, 대부분이 첫 아이가 태어날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첫 아이의 탄생이 결혼한 부부에게 있어서 왜 그렇게 행복감과 기쁨을 주었을까요?
 아마도 부부의 사랑의 결실과, 오랜 기다림 속에 태어난 아이라 행복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첫 아이라는 상징감이 주는 의미도 컸을 것입니다. 물론 저에게도 그랬습니다.
 오래 동안 기다렸던 첫 아이의 탄생은 생명에 대한 신비함과 함께, 어쩜 그렇게 저와 똑 닮은 아이가 태어났나 하는 놀라움도 한몫했습니다.
 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우리에게 신비로움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는 이 역사의 현장 속에, 하나님 백성들의 영적 공동체인 교회가 탄생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오실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그들은 기도에 힘쓰며 성령께서 임재하실 공동체를 꿈꾸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질 교회가 이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에베소서(3:1-11)에서 바울은 “교회는 하나님의 비밀이요, 영원 전부터 예정된 하나님의 계획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왜곡되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를 건물로 인식하기도 하고, 주일에 드리는 한 시간의 예배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이제 교회는 주일에 드리는 한 시간짜리 예배로 축소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쇼핑하듯 교회에 오고 있습니다. 교회를 마치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존재가 되어주기를 기대합니다.
 더 나은 환경과 편안함, 더 편리한 씨스템, 더 쉽게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자신들의 귀와 영혼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찬양와 설교를 원합니다.
 이렇게 교회는 점점 소비자 중심의 세계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덧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과, 성령의 임재 앞에 직면하는 것과, 자신을 주께 드리는 제자의 삶은 잊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영광과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으며, 세상을 향해 도전하기보다는 세상의 변두리가 되어 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교회란 무엇인가를, 진정한 교회의 메시지와 모습은 어떠함인가를 성경에서 찾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여주시는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면 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불편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찾고 있는 교회, 우리가 기대하는 교회의 모습과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너무 다른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영광과 희망을 되찾기 위해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의 본질과 메시지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이제 오늘 교회의 첫 탄생을 보면서 교회란 무엇이며, 교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그렇다면 하나님 백성들의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는 어떻게 탄생하였을까요?
 오늘 본문을 읽어볼 때, 교회는 성령님의 강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절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오순절은 헬라어로 <펜테코스토스>인데 50을 말하는 것이며, 유월절이 지난 첫 안식일로부터 7주가 지난 첫날에 지킨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추수한 보리 단을 하나님께 드린 날로부터 50일이 되는 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레23:15-16).
 그래서 이 날을 오순절, 또는 맥추절, 칠칠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말씀의 성취인 성령님의 강림이 오순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1:4-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은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들 가운데 오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탄생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과 구별되는 새로운 신앙공동체인 신약교회의 탄생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날 기도하고 있던 제자들과 믿는 자들 가운데 성령님이 강림하셨는데, 성령 강림의 모습을 2:2-3은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2절에 “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은 소리”, 3절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라고 표현한 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성경은 분명히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던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날에 일어난 현상이 매우 이례적이고,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신비적인 사건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성령님이 이 땅에 강림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제자들이 감각적으로도 인지할 수 있는, 매우 실제적인 경험이었음을 증거 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믿는 자들에게 임한 성령 강림의 증거라면, 4절에 말씀하시는 방언은 성령 강림에 대한 증거로 외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4절에 보면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 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성령을 받은 제자들과 믿는 자들은 너무 기뻐 밖으로 나갔던지, 아니면 기도하던 장소가 길옆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쉽게 그들이 방언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랬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다 자기들의 난 곳 언어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큰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6-11).
 물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방언은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고 있는 대부분의 방언과는 다른 형태의 방언입니다.
 오늘날 방언은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통역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이지만, 이날 성령 강림 때 믿는 자들이 했던 방언은 통역이 필요 없이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적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시였습니다.
 모든 자들이 성령께서 오셨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성령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제 오순절은 단순히 제사장들이 빵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갖는 절기가 되었습니다. 역사 속에 가장 위대하고 결정적인 사건이 이날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고귀한 계획이 이날 성취된 것입니다.
 바로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아는 것처럼 교회는 사람에 의해 세워진 공동체가 아닙니다. 이미 주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신 공동체였습니다.
 교회는 사람의 계획이나, 개척한 목사나 어떤 특정한 사람에 의해 탄생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교회의 출발점은 인간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의 출발이 누구로부터인가를 진정으로 알 때,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이제 첫 교회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를 보겠습니까?(14-36)
 오순절 날 일어난 이 사건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외형적으로 나타난 현상 때문에 놀라며 당황하였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워 했는지를, 6절에 <소동하며>, 7절에 <다 놀라 기이히 여기며>, 8절에 <어찜이뇨>, 12절에 <다 놀라며 의혹하여>라는 말씀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과 시골 사람들의 입에서 자기가 태어나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로 말함을 듣는 것은 예루살렘에 온 순례자들에게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기도 하였습니다(12-13).
 
 이제 이런 소동가운데, 베드로는 자신들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방언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 앞에서 이제 베드로가 설교하기 시작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베드로가 설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먼저 베드로는 그들이 놀랐던 현상의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베드로는 자신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무엇에 취해있는지를 이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베드로는 이 일이, 선지자 요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15절에서 21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씀을 해석하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부어진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몇몇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성령께서 임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성령님은 성별이나, 연령이나, 사회적 계층이나, 어떤 차이 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 강림의 사건은 구약성경의 성취임을 강조하면서, 이것을 예수님의 사역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우리에게 일어난 이 놀라운 일을 여러분들이 이해하고 싶다면, 예수님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담대하게 예수님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 것의 배후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제 얼마 전에 일어난 사건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목격했거나, 기억하거나 들었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소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려주기 위해 구약의 말씀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25-28,34-35).
 그는 구약성경에서 다윗이 한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과 죽음이 구약성경의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가운데 일어난 일임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21절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가 죄로부터, 영원한 멸망과 심판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의 선물과 놀라운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36절을 보면, 너희가 이 메시아를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주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도나이>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를 수가 없기 때문에 대신 하나님을 말할 때 사용했던 단어가 바로 아도나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이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로 오면 복 받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로 오면 평안을 얻는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로 오면 병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로 오면 인생에 예수라는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그의 메시지를 듣고 있는 청중들을 향해,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그동안 살아왔는지를 묻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배운 사람인지, 종교성이 얼마나 깊은지를 묻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이 어찜이뇨’라고 물었을 때, 그는 자신들이 경험한 체험을 말하며, 이 놀라운 체험을 경험해보십시오 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여러분은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데, 나사렛 예수가 이 질문의 유일한 대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이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대답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분께서 하신 일이 그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오셨으며,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셔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려고 오신 분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저도 오늘 여러분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은 여러분의 인생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세 번째로 베드로의 메시지를 들은 청중의 반응을 보겠습니다.(37-42)
 37절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이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마음이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고 사도들에게 질문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한 것은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얼마나 인간의 마음이 완악합니까? 자신의 문제와 죄 앞에서 피해가고 도망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메시지 앞에 반응합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여시고, 메시지에 귀 기우리게 하고,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나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영적으로 죽어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단순한 갈릴리 나사렛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신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것은 영적 무지와 죄 때문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깨닫게 되자 그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소리쳤습니다.
 베드로가 이 질문에 대해 중요한 대답을 하는데, 38절입니다. 다 같이 보겠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으면 모든 죄가 용서될 것이며 성령님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고 베드로는 설명한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된 것이 두 가지인데, 이 말씀은 교회는 어떤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냥 교회에 오면 교회 회원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교회에 와서 내가 앞으로 이 교회에 다니겠다고 등록하면 교회 회원이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교회는 그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히 함께 할 사람들의 영적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회공동체의 진정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회개하고 거듭나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가족의 공동체인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자신의 죄를 용서한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신 사람만이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있어,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이제 하나님 없이 살던 길에서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나도 미워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나도 원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단순한 마음의 결단이나 후회가 아닙니다. 후회는 양심과 도덕에 근거를 둔 반성이지만, 회개는 성령께서 구원을 위해 하시는 변화입니다.
 진정한 회개란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자리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와 그분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영적 공동체인 교회의 회원이 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말씀도, 오직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만이 교회에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행2:47).
 거듭나는 것은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결단입니다.
 부모가 예수 믿기에 내가 저절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에서 어떤 일을 열심히 하기 때문에 거듭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교회 예배에 정규적으로 참석하기 때문에 거듭나는 것도 아닙니다. 어렸을 때 세례 받았기 때문에 거듭나는 것도 아닙니다. 선한 일에 동참한다고 거듭나는 것도 아닙니다.
 거듭나는 것은 오직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교회 회원의 또 다른 자격은, 침(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침(세)례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했다는 것과, 이제 내가 예수 믿는 사람임을 세상에 알리는 하나의 상징적 의식입니다.
 침(세)례는 이제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아닌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겠노라는 결단을 세상에 알리는 신앙 고백의 상징입니다.
 침례가 구원을 주는 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침례를 받아야합니다.
 침례란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제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침례는 생명을 건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거짓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을 계속 읽어보면, 침(세)례는 항상 교회의 회원이 되는 자격 조건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행2:41, 8:12,38, 9:18, 10:48 ).
 그러므로 회개하고 거듭나 성령을 받고 침례를 받은 사람들이 진정한 교회공동체의 일원인 것입니다.
 
 이제 오늘 저는 설교를 마치면서 여러분들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분을 주와 그리스도로 만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성경에서 가장 희망 없는 사람들을 말할 때, 세리나 창녀 같은 죄인들을 말하지 않고, 가장 종교적인 열심이 있었던 바리새인들을 말하고 있는 지 아십니까?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의로움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시 가장 기초적이며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왜 제가 이 질문을 그렇게도 많이 반복하여 질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왜냐하면 저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여러분 인생에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합니다.
 저는 우리 안에 이 질문 앞에 대답하지 못하는 분들이 한분이라도 있다면 수백번, 아니 수천번이라도 다시 질문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그분과 함께 동행 하고 있습니까?”
 만일 이 질문 앞에 분명히 예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이 시간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지고 자랑하고 붙들고 있는 모든 알량한 것들이 하나님 앞에 쓰레기와 같음을 인정하십시오. 세상의 덧없는 영광에 매여 살고 있었음을 고백하십시오.
 그분 앞에 엎드려 나는 죄로 인해 형벌 받아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의 죄를 인정하고 버리겠다고 선언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십시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십시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제 여러분의 삶을 그분께 드리십시오. 그분이 나의 인생의 주인이심을 결단하고 계속 그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을 안다고 하는 것보다 그분이 나를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청와대에 가서 문재인 대통령을 안다고 말하면 나를 들어가게 허락해 주나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우리 모두는 문재인 대통령을 압니다. 안다고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와 문대통령의 관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이 나를 안다고 말해야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예수님을 만나지도 않고 들은 것으로 안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는 것보다 그분이 나를 아느냐입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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