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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작성일
 
2019/06/12 11:50:32
 
조회수
18
글제목
 
사도행전 강해(1) - 교회 탄생의 준비(행1:1-14)






사도행전 강해(1)
 교회 탄생을 위한 준비(행1:1-14)
 
 제가 simple church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기독교 안에서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하나는 “무엇이 본질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이 효과적인가? 하는 것이다.
 교회 성장과 부흥을 추구하는 현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경의 원리나 본질보다는, 효과적인 결과나 열매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본질은 흐려진 채 효율성만이 강조됨으로 기형적 교회들이 양산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의 본질과 효율성이라는 것은 나누어 질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늘 교회의 본질에 더 관심을 많이 갖는 이유는,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부흥, 성장이라는 것에 관심을 집중한 나머지, 더 중요한 본질에 대한 문제를 등한히 여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의 성장은 지나온 시간 속에 분명히 주님의 축복이었으며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성장 뒤에 따라온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있어온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세속주의, 일부 대형교회들의 세습 문제나 목사들의 스캔들 같은 도덕 불감증 등은 이제 교회 밖의 비그리스도인에게 까지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의 본질인가에 대한 고민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신약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사도행전을 강해하면서 우리 교회가 어떤 본질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야 하는 가를 나누기 원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정말 주님이 세우기 원하신 교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앞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주님이 꿈꾸셨던 교회의 본질은 어떤 것인지, 신약교회의 모습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복음이 세계 곳곳에 퍼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모델을 보기 위해서 사도행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이 교회에 대한 우리의 유일한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현재 성경과 다른 어떤 일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앞으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길과 방법이 아닌 다른 길로 가려고 한다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가도록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강해를 시작하면서 잠시 사도행전의 배경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의사 누가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누가복음의 저자와 사도행전의 저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후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우리>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16:10-17 20:5, 21:18), 이것을 통해 저자가 바울의 일행 중에 한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로서 바울의 2차전도 여행 시에 바울의 전도로 그리스도인이 된 후 바울의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있었던 충성스러운 일군이었습니다.(딤후4:11)
 
 사도행전이 기록된 시기를 보통 61-63년으로 봅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으면서 복음을 전했다는 내용으로 끝나고 있는데, 이것은 바울이 죽기 전에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순교를 65-66년 정도로 보기 때문에 그 이전에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역사에 아주 중요한 사건인 64년 로마의 화제와 그 이후 일어난 네로 황제의 핍박이나,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을 보아 그 이전에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목적은,
 일차적인 목적은 예수님을 믿은 데오빌로를 위해 예수님 승천이후에 세워진 교회역사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 것입니다
 아마도 사도행전이 기록된 가장 중요한 목적은, 복음이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전파 되었는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사도행전 전체의 주제구절입니다.
 사도행전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초대교회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지식을 제공해 주며, 지역적으로 유대인들 가운데 행하셨던 예수님의 사역이, 교회가 설립되고 전 세계로 확장 되어 가는 과도기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관점은, 복음이 어느 지역으로,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또한 당시의 권력자인 로마의 법정으로부터 기독교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는 기독교에 대한 왜곡된 소문을 알고 있었기에, 민란과 파괴의 책임이 초대 기독교인에게 있다는 왜곡된 혐의를 해명하는데 관심을 두었습니다.
 여러 도시에서 소동이 일어난 것은 기독교를 적대시한 성난 유대인들의 책임임을 알려주고, 로마당국이 기독교인들에 대한 이런 모든 혐의와 관련이 없음을 되풀이하여 밝혀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역사서로서, 로마 황제의 이름과 여러 통치자들의 이름과, 고위 관리자들의 이름과 지명들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데, 이런 모든 것들은 역사적 문헌들에 의해 누가의 기록이 확실하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본문을 보겠습니다.
 1-3절입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누가의 첫 번째 책인 누가복음이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천국에 가시기 전까지의 활동을 기록한 것이라면,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금 누가는 자신의 첫 번째 기록인 누가복음과 이제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누가복음에서는 <데오빌로 각하께>라고 수신자를 표현했는데, 사도행전에서는 그냥 <데오빌로에게>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누가복음을 기록할 당시와 사도행전을 기록할 당시의 데오빌로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 보입니다.
 데오빌로는 복음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데오빌로는 과감하게 각하라는 존칭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로 자신을 보고 있습니다.
 철저한 계급과 신분을 바탕으로 살던 당시 사회에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계급과 신분의 장벽을 뛰어넘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서 우리는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사회적 신분이 무엇이든지간에 교회 안에서는 모두가 같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목사, 장로, 집사의 직분도 섬기라고 주신 것이지 자랑하거나 권세를 가지고 섬김을 받고 주장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복음을 알기 전에는 각하였는지 모르지만, 복음을 안다면 그냥 데오빌로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후 40일의 시간을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활의 몸을 보여주시고, 제자들과 이 땅에서 마지막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서 이 땅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고 승천하시는 시간이며, 제자들은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땅 끝까지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모이게 될 새로운 영적 공동체인 교회가 탄생하기 위해 제자들과 믿는 자들은 준비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가기 위한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가 탄생하기 위해 제자들과 믿는 자들이 준비되어야 할 것들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성령의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4,5절을 읽어보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오래지 않아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분은 믿는 자들 가운데 내주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에베소서 1:13은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래 전에 자신이 떠나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떠나면 보혜사 성령님이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7을 보면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6:13은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 땅을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조직체가 아닙니다. 건물도 아닙니다. 믿는 성도들의 유기적인 영적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노력이나 계획, 또는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교회가 세워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오직 성령의 오심과 그분의 능력에 의해 탄생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시며 교회를 인도하시며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모든 믿는 자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동시에 믿는 자들의 마음 가운데 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는 말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을 믿고 회개하여 거듭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을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자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8:14-16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3에 보니,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도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구세주와 주님으로 마음 가운데 영접하였다면, 이미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이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 영혼 안에 내주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십니다.(고린도전서12:4-11,엡4:11-12)
 8절에도 보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증인이 되리라“ 말씀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님께 순종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으로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성령의 충만함 없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18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명령인 것입니다.
 영적 공동체인 교회는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의 영인 성령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님의 임재와 다스림 아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껍데기만 남습니다.
 딱딱하고 사랑이 없으며, 섬김의 감사가 없고, 찬양의 감격이 없고, 교제의 기쁨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과 동행하기 위해 성령의 충만을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성령님과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예배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성령 침례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이것이 바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삶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지 전이기에 성령님이 신자들의 마음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침례받기 위해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 받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시작하려면 성령님이 계셔야 합니다.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이 아닌 다른 것으로 교회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좋은 것도 무익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동시에 교회가 탄생하기 위해 믿는 자들이 준비해야 할 두 번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고 말씀하십니다.
 초대 교회는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도했고, 함께 기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침례를 받기 위해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제자들과 믿는 자들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 기도하지 않는 교회를 사단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면 고민만 늘지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바로 성령 충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기도에 대해 지식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적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이시고 그분이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결코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십니까?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기도하는 사람만이 기도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축복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기도의 중요성을 알기에, 기도의 감격을 알기에 결코 기도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 <힘썼다>라는 단어는 <끈기 있게>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응답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 함께 모여 연합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18-20은 예수님께서 용서에 대한 말씀을 가르치시다가, 기도에 대한 놀라운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기도는 풀고 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한번은 선교사 기도 모임 때 설교하신 한 선교사님이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기대하지 말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많은 경우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간구하기만 하지, 정말 하나님과의 교제를 원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저도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얼굴을 구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곤 합니다.
 우리 자신의 기도 생활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개인 기도와 연합기도가 자연스러운 우리 삶의 일부가 되도록 할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도 개인적인 기도뿐 아니라, 모일 때마다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의무가 아니라 즐거운 특권입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는 기도 위에 세워지는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탄생하기 위해 믿는 자들이 준비해야 할 세 번째는,
 예수님과 같은 꿈을 꾸어야 합니다.
 3절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6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과거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민족인 이스라엘 회복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이스라엘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까운 시기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 민족밖에 관심이 없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가져야할 중요한 관심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으로 오는 정치적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으로 오는 영적 능력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은 너희를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생각하고 꿈꾸는 것과 예수님의 생각과 꿈은 얼마나 다릅니까?
 제자들이 자신들의 나라와 민족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정치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꾸어야 할 꿈이 있습니다.
 내 가족, 내 미래, 내 민족이 얼마나 잘 살 것인가 보다도,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꿈, 하나님 없이 소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주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꿈, 죄인이었던 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용서받고 회복되는 꿈, 깨어진 가정이 예수님의 용서로 회복되는 꿈, 상처와 아픔 속에서 살던 자들이 예수님의 은혜로 회복되는 꿈, 어두움에 묶였던 도시와 나라가 예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회복되는 꿈. 슬픔과 좌절의 눈동자가 감격과 희망의 눈동자로 회복되는 꿈,
 우리는 이런 꿈을 가져야 합니다.
 
 저에게는 한 꿈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알고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헌신하여, 각자의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전 이것 때문에 오늘도 살고 있습니다.
 때로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꿈을 꿉니다. 이곳의 한사람 한 사람을 보면서 저는 계속 꿈을 꿉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스쳐갈 때마다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때로는 지나치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서, 한인들 기업체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땅을 변화시키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인도에 있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인도에 있는 이유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구르가온한인교회를 세우신 이유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저는 처음 인도에 와서 교회 개척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교회들이 주변에 이미 있는데 왜 또 하나의 새로운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 가였습니다.
 과연 새로운 교회가 또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제 마음을 계속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 기도하던 중에 단순한 또 하나의 좋은 교회가 아니라, 신약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주님의 교회를 시작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시작한 우리 교회가 이제 벌써 7년 반이 지났습니다.
 우리 교회는 여러분들의 기도와 섬김으로 그동안 건강한 좋은 교회로 한인사회에 알려져 왔습니다. 목사와 성도들이 모두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것은 단순히 행복하고 분위기 좋은 또 하나의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위대한 교회를 향한 발걸음을 우리는 계속 걸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이즈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꿈꾸셨던 교회를 우리도 함께 꿈꾸고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 교회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지체들이 데오빌로가 되어야합니다. 누가가 되어야합니다.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이 되어야합니다.
 한집사님이, 이집사님이, 정집사님이, 수아가, 찬재가, 은이가, 가현이가, 이 시대의 데오빌로가 되어야합니다.
 복음 때문에 인생이 바뀌고 삶의 가치가 바뀐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예수가 꿈꾸었던 교회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복음으로 인생이 바뀌고 삶의 표준이 바뀐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향해 하나님 나라를 도전하는 증인으로서의 공동체였습니다.
 예수가 꿈꾸었던 교회, 이 꿈을 저와 함께 꾸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것이 오늘 사도행전을 시작하는 제 마음의 열망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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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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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강해(2) - 교회의 탄생(행2:1-42)

김기태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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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강해(1) - 교회 탄생의 준비(행1:1-14)

김기태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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